문제
50. (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 |
① (가) – 귀주 대첩
② (나) – 안시성 전투
③ (다) – 병자호란
④ (라) – 을사늑약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① (가) – 귀주 대첩
612년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전쟁 당시 을지문덕이 살수 대첩으로 수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쳤다.
귀주 대첩은 고려 시대 강감찬이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나) – 안시성 전투
귀주 대첩은 고려 시대 강감찬이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
안시성 전투는 645년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당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다) – 병자호란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수군을 이끌고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병자호란은 1636년 청이 친명배금을 명분으로 조선을 침입한 사건을 말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라) – 을사늑약
고종 황제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민영환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에 동포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④번이다.
| 고구려와 수·당 전쟁 |
|
||
| 고려 거란의 침입 |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강감찬이 흥화진 전투에서 승리.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
||
| 임진왜란 |
중종 때의 3포 왜란(1510년),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 발생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 강구
일본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뒤 철저한 준비 끝에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1592년). 송상현이 동래성에서 항전하였지만 패배
전라도 지역에서 이순신이 이끈 수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남해안 여러 곳에서 연승을 거두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둠 한산도 대첩에서 거북선 사용
의병은 경상도에서 곽재우가 처음 일으킨 후 김천일, 조헌, 고경명, 정문부, 유정(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여러 지방에서 왜군과 전투 함경도에서는 정문부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점령된 지역을 수복. 이를 북관대첩이라고 함.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평양성 전투). 권율 장군은 관군, 백성과 함께 합심하여 행주산성에서 적의 대규모 공격 방어(행주 대첩).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이끄는 관민이 일본군을 패배시킴(진주 대첩, 제1차 진주성 전투).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고, 속오법을 실시하여 지방군 편제도 개편하였으며, 화포를 개량하고 조총도 제작하여 무기의 약점을 보완
3년여에 걸친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왜군이 다시 침입(1597년).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직산에서 격퇴하고 이순신이 적선을 명량에서 대파하자(명량 해전),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본국으로 철수
조선 –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식량 부족.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불국사, 서적, 실록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었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감 징비록 –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명의 군대 파견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 – 일본은 조선에서 활자, 그림, 서적 등을 약탈해 갔고, 성리학자와 우수한 인쇄공 및 도자기 기술자 등을 포로로 잡아가 일본의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명 –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북방의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변화 |
||
| 항일 의병 운동 |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유인석, 이소응, 허위 등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이 주도하였다. 이소응 부대는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유인석 부대는 제천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다.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단발령을 취소하고 의병의 해산을 권유하자, 의병들은 대부분 활동을 중단하였다.
을미의병의 활동 후, 1900년을 즈음하여 해산된 농민들의 일부가 활빈당을 조직하여 반봉건⋅반침략 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활빈당은 양반·부호, 관청, 장시 등을 습격하여 무기와 재물을 약탈하고, 그 중에서 일부를 빈민에게 분배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동학 농민군의 잔여 세력과 행상, 유민, 노동자, 걸인 등으로 조직되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대규모의 의병 부대가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다. 민종식, 최익현 등 양반 출신 의병장을 비롯하여, 평민 출신 의병장인 신돌석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최익현은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장으로 국내외에서 항일전을 전개하고 있던 안중근은, 우리나라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표와 회담하기 위하여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그를 사살하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1909년).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였다.
이재명은 명동 성당 앞에서 을사 5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혔다.
고종 황제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민영환은 동포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으로 논설을 실어 일본의 침략을 비난하였으며, 조약 체결에 앞장선 친일 대신들을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나철, 오기호 등은 5적 암살단을 조직하여 을사 5적의 집을 불사르고 일진회를 습격하는 등 매국노를 처단하고자 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908년 전명운, 장인환이 일본의 한국 침략이 정당하다고 주장한 미국인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 운동은 그 규모와 성격면에서 의병 전쟁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 때의 의병을 정미의병이라고 한다. 시위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부대에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는 보다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무기를 갖추어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정미의병 이후, 각지에서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일본군을 몰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 의병장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을 편성하였다. 이 때, 의병은 서울 주재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법상의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발송하여, 스스로 독립군임을 내세웠다. 그 중 300명의 선발대는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으나, 일본군의 선제 공격을 받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던 의병 투쟁은 그 후 일본군의 남한 대토벌 작전을 계기로 크게 위축되었다. 일부 의병 부대는 국권을 빼앗긴 후에 만주나 연해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
||
| 조선 인조 |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반란. 이괄은 인조반정에 공을 세웠으나 2등 공신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마침 조선에서 이괄의 난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해지자, 후금은 광해군을 위하여 보복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쳐들어왔다(1627년). 이를 정묘호란이라 한다. 정봉수와 이립 등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맞아 싸웠다. 후금의 군대는 보급로가 끊어지자 강화를 제의하여 화의가 이루어졌다.
세력을 더욱 확장한 후금은 군신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였고, 국호를 청이라 고친 다음 친명배금을 명분으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 왔다(1636년). 이를 병자호란이라 한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청군에 대항하고 김준룡이 광교산 전투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주화파인 최명길 등의 주장과 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삼전도의 굴욕). 그 동안 조선에 조공을 바쳐 왔고, 조선에서도 오랑캐로 여겨 왔던 여진족이 세운 나라에 거꾸로 군신 관계를 맺게 되고, 임금이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는 사실은 조선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인조 때 연분9등법을 따르지 않고 풍년이건 흉년이건 관계 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두로 고정시켰다. 이를 영정법이라 한다(1635년). |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번 기출 해설 – 구석기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번 기출 해설 – 한성 함락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번 기출 해설 – 고조선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번 기출 해설 – 대가야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5번 기출 해설 – 백제 웅진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6번 기출 해설 – 골품 제도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7번 기출 해설 – 백제 멸망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8번 기출 해설 – 장보고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9번 기출 해설 – 발해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0번 기출 해설 – 고려 성종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1번 기출 해설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2번 기출 해설 – 고려 태조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3번 기출 해설 – 원 간섭기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4번 기출 해설 – 최영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5번 기출 해설 – 고려 석탑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6번 기출 해설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7번 기출 해설 – 윤관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8번 기출 해설 – 의천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9번 기출 해설 – 계유정난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0번 기출 해설 – 조선 통신사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1번 기출 해설 – 병자호란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2번 기출 해설 – 퇴계 이황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3번 기출 해설 – 현량과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4번 기출 해설 – 훈련도감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5번 기출 해설 – 균역법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6번 기출 해설 – 박지원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7번 기출 해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8번 기출 해설 – 조선 후기 경제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29번 기출 해설 – 근대 문물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0번 기출 해설- 대한제국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1번 기출 해설 – 애국계몽운동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2번 기출 해설 – 을미개혁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3번 기출 해설 – 13도 창의군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4번 기출 해설 – 국외 이주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5번 기출 해설 – 국채보상운동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6번 기출 해설 – 의열단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7번 기출 해설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8번 기출 해설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39번 기출 해설 – 대한 광복회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0번 기출 해설 – 연해주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1번 기출 해설 – 김구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2번 기출 해설 – 전형필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3번 기출 해설 – 양세봉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4번 기출 해설 – 국가 총동원법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5번 기출 해설 – 제주 4.3 사건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6번 기출 해설 – 3·15 부정 선거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7번 기출 해설 – 6.25 전쟁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8번 기출 해설 – 1970년대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49번 기출 해설 – 김대중 정부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50번 기출 해설
-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1~50번 기출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