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국가직 7급 PSAT 언어논리 2번 해설 – 김시민 진주성

2번 문제

2.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592년 4월 왜군은 부산을 점령했다. 이후 왜군 일부는 평양까지 북상했고, 부산에 남은 왜군 지휘부는 북상한 군대의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서해안으로 진출하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 막혔다. 이에 왜군은 육로로 전라도에 진입해 이순신을 압박하려 했다. 부산의 왜군 지휘부는 이를 위해 그해 9월, 2만여 명의 병력으로 전라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진주성을 치기로 했다. 당시 진주목사는 이경이었는데, 그는 왜군을 피해 지리산으로 도피했다. 경상도의 군 행정을 맡고 있던 초유사 김성일은 이 소식을 듣고 이경의 부하였던 김시민에게 진주성 방어를 맡겼다. 이에 김시민은 급히 병력을 수습한 뒤, 부산으로부터 서쪽으로 진군하는 왜군을 사천 등지에서 맞아 싸워 이겼다. 국왕 선조는 그 공을 높이 사 김시민을 진주목사로 임명했다. 진주목사가 된 김시민은 본격적으로 전투를 준비하고자 진주성으로 돌아왔다.

당시 진주성은 방어하기 쉽지 않았다. 성벽의 높이가 원래부터 낮았던 데다가 한 해 전의 호우로 동문 성벽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또 성의 둘레가 길어 1만 명 이상의 병력이 있어야만 방어할 수 있었는데 김시민이 이끄는 병력은 3,800여 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불리한 상황에도 김시민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인근 고을에서 화약과 현자총통 등의 무기를 얻어 진주성 동문에 배치했다. 또 노인과 부녀자들에게 군복을 입혀 동문을 제외한 남ㆍ북ㆍ서문 쪽에 배치했다. 뒤늦게 진주성에 당도한 왜군은 양측 병력의 수가 비슷하다고 오판했으며, 모든 성문을 공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가장 약해 보이는 동문 쪽을 집중적으로 쳤다. 왜군은 병력을 6개 조로 나누어 동문 쪽을 번갈아 공격했다. 1개 조 3,400여 명의 병력으로 매일 4시간씩 돌아가며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는 전술을 택한 것이다.

주력 부대를 동문에 두고 철저히 준비한 김시민은 밀려드는 왜군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다.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의 끈질긴 저항에 막힌 왜군은 단성 등 인근 지역으로 일부 병력을 보내 우회하게도 했지만, 그곳을 지키던 최경회와 정기룡 등의 부대에 패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해 10월 10일 왜군은 마지막으로 총력을 기울여 진주성을 공격했다. 이날 김시민은 전투 현장을 살펴보던 중 왜군의 총격으로 숨졌으나, 조선군은 지휘권을 이어받은 곤양군수 이광악을 중심으로 뭉쳐 끝까지 왜군을 물리쳤다.

① 이경은 김성일과 합세하여 휘하 병력을 이끌고 지리산으로 이동했다.

② 정기룡은 진주목사가 되어 진주성의 북문과 서문을 지키다가 전사했다.

③ 김시민은 사천 등지에서 왜군에 맞서 승리를 거둔 이후에 진주목사가 되었다.

④ 김성일은 왜군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호우로 무너진 진주성 동문 성벽을 수리했다.

⑤ 이광악은 부산에서 대기하다가 김시민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진주성에 들어갔다.

 

출처: 국가공무원채용시스템

 

문제 해설

① 이경은 김성일과 합세하여 휘하 병력을 이끌고 지리산으로 이동했다.

당시 진주목사는 이경이었는데, 그는 왜군을 피해 지리산으로 도피했다.

이경은 왜군을 피해 지리산으로 도피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정기룡은 진주목사가 되어 진주성의 북문과 서문을 지키다가 전사했다.

주력 부대를 동문에 두고 철저히 준비한 김시민은 밀려드는 왜군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다.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의 끈질긴 저항에 막힌 왜군은 단성 등 인근 지역으로 일부 병력을 보내 우회하게도 했지만, 그곳을 지키던 최경회와 정기룡 등의 부대에 패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해 10월 10일 왜군은 마지막으로 총력을 기울여 진주성을 공격했다. 이날 김시민은 전투 현장을 살펴보던 중 왜군의 총격으로 숨졌으나, 조선군은 지휘권을 이어받은 곤양군수 이광악을 중심으로 뭉쳐 끝까지 왜군을 물리쳤다.

진주성을 공격한 왜군이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의 끈질긴 저항에 막히자 단성 등 인근 지역으로 일부 병력을 보내 우회하게도 했지만, 그곳을 지키던 최경회와 정기룡 등의 부대에 패했다.

정기룡이 진주목사가 되어 진주성의 북문과 서문을 지키다가 전사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김시민은 사천 등지에서 왜군에 맞서 승리를 거둔 이후에 진주목사가 되었다.

경상도의 군 행정을 맡고 있던 초유사 김성일은 이 소식을 듣고 이경의 부하였던 김시민에게 진주성 방어를 맡겼다. 이에 김시민은 급히 병력을 수습한 뒤, 부산으로부터 서쪽으로 진군하는 왜군을 사천 등지에서 맞아 싸워 이겼다. 국왕 선조는 그 공을 높이 사 김시민을 진주목사로 임명했다.

김시민은 부산으로부터 서쪽으로 진군하는 왜군을 사천 등지에서 맞아 싸워 이긴 후 진주목사로 임명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김성일은 왜군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호우로 무너진 진주성 동문 성벽을 수리했다.

경상도의 군 행정을 맡고 있던 초유사 김성일은 이 소식을 듣고 이경의 부하였던 김시민에게 진주성 방어를 맡겼다.

경상도의 군 행정을 맡고 있던 김성일이 김시민에게 진주성 방어를 맡겼다는 내용만 언급될 뿐, 호우로 무너진 진주성 동문 성벽을 수리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이광악은 부산에서 대기하다가 김시민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진주성에 들어갔다.

이날 김시민은 전투 현장을 살펴보던 중 왜군의 총격으로 숨졌으나, 조선군은 지휘권을 이어받은 곤양군수 이광악을 중심으로 뭉쳐 끝까지 왜군을 물리쳤다.

이광악이 부산에서 대기했는지 여부는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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