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10번 문제

10.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② 원광이 왕명으로 걸사표를 작성하였다.

③ 김헌창이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④ 최치원이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⑤ 김춘추가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올랐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돠었다. 780년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

(나) 846년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①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원광이 왕명으로 걸사표를 작성하였다.

608년 신라 진평왕은 원광법사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정벌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걸사표(乞師表)를 지어, 수나라에 보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김헌창이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예정된 김주원 대신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822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최치원이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후 귀국하여 894년 통일 신라의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김춘추가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올랐다.

신라 태종 무열왕(김춘추)은 654년 왕위에 올랐다.

이후 668년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780년).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 96각간의 난

768년 혜공왕 때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각간들이 군사를 일으켜 권력 다툼을 벌였다.

 

  • 김헌창의 난(822년)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예정된 김주원 대신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822년).

 

  • 장보고의 난

846년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적고적의 난

지방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904년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신라
진평왕
  • 608년 원광법사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정벌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걸사표(乞師表)를 지어, 수나라에 보냈다.
남북국의
역사 편찬과
유학의 보급
  • 역사 편찬

신라의 대표적 문장가인 김대문은 화랑의 전기를 모은 화랑세기, 유명한 승려의 전기를 모은 고승전, 한산주 지방의 지리지인 한산기, 신라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 유학자

신라의 유학자는 6두품 출신이 많았다.

    • 강수

외교 문서를 잘 지은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외교 문서인 청방인문표를 작성하였다.

    • 설총

설총은 원효 대사의 아들로 유교 경전에 조예가 깊었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이두를 정리하여 한문 교육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또한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임금도 도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함을 주장하였다.

    • 최치원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후 귀국하여 894년 통일 신라의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문장과 저술을 남겼다.

중국 황소의 난이 발생했을 때 격황소서를 지어 세상에 이름을 떨치다.

    • 삼대목

888년 진성여왕 시기,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을 편찬하였다.

 

  • 발해

발해는 당에 유학생을 파견하였는데, 당의 빈공과에 급제한 사람이 여러 명 나왔다.

신라
무열왕
  • 최초의 진골 출신 왕
  • 삼국 통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
  • 이 때부터 태종 무열왕의 직계 자손이 왕위를 세습
  • 집사부의 장관인 시중의 기능을 강화하고, 귀족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던 상대등의 세력을 억제
  • 진골 귀족 세력이 약화되고 왕권이 전제화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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