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 문제
16.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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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②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③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④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 등이 봉기하였다.
⑤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흑창을 처음 설치하였다.
문제 해설
고려 원 간섭기에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했다.
①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시대 서얼 계층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그런데 조선 영⋅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하자,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 것을 요구하였다(서얼이 통청 운동).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조선 후기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고려 원 간섭기에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 등이 봉기하였다.
고려의 원 간섭기 이전인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흑창을 처음 설치하였다.
고려 태조 때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흑창을 처음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원의 내정간섭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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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간섭기 사회 변화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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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중간 계층의 신분 상승 운동 |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 변동이 심화되는 가운데 서얼과 중인 등 중간 계층의 역할도 커졌다.
서얼에 대한 차별은 임진왜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전란으로 재정적 타격을 받은 정부가 납속책을 실시하고 공명첩을 발급하자, 서얼은 이를 이용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영⋅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하자,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정조 때에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제각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술직 중인들은 주로 기술직에 종사하며 축적한 재산과 탄탄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대규모 소청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중인 중에서도 역관들은 청과의 외교 업무에 종사하면서 서학을 비롯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여, 성리학적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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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사회 불안의 심화 |
탐관오리의 탐학과 횡포는 날로 심해 갔다. 또한 재난과 질병이 거듭되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져 농민의 생활은 그만큼 더 어려워져 갔다. 1820년의 전국적인 수해와 이듬해 콜레라의 만연으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그 뒤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굶주려 떠도는 백성이 거리를 메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서양의 이양선까지 연해에 출몰하자,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갔다.
사회 불안이 점점 더해 감에 따라 각처에서는 도적이 크게 일어났다. 화적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지방의 토호나 부상을 공격하였고, 수적은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무대로 조운선이나 상선을 약탈하였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유교적 명분론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비기, 도참 등을 이용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다. 말세의 도래, 왕조의 교체, 변란의 예고 등 근거없는 낭설이 횡행하여 민심을 혼란시켰다. 여기에 무격 신앙이나 미륵 신앙도 점차 확장되어 갔다. 현세에서 얻지 못하는 행복을 미륵 신앙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며, 심지어 살아 있는 미륵불을 자처하면서 서민을 현혹시켜 끌어모으는 무리도 나타났다.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은 이 때에 널리 유행한 비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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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무신정권기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1237년, 고려 고종 때 원율과 담양 지역에서 이연년 형제가 봉기를 일으켰다. 김경손이 이를 진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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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태조 |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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