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고려 경제 활동

12번 문제

12. 다음 자료에 나타난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솔빈부의 말이 특산물로 유명하였다.

② 담배와 면화 등의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③ 생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활동하였다.

④ 중강 개시와 중강 후시를 통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⑤ 특수 행정 구역인 소에서 여러 물품이 생산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숙종 때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의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이 만들어졌다.

 

① 솔빈부의 말이 특산물로 유명하였다.

발해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담배와 면화 등의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조선 후기 담배와 면화 등의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생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민영 광산의 채굴이 허용되면서 생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활동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중강 개시와 중강 후시를 통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 중강 개시(공무역)와 중강 후시(밀무역)를 통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특수 행정 구역인 소에서 여러 물품이 생산되었다.

고려 시대 특수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는 주현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향⋅부곡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고, 소의 주민은 수공업에 종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서적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고려
지방 행정 조직
  • 고려 성종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지방관을 파견

 

  • 고려 현종

전국을 5도와 양계(동계, 북계), 경기로 크게 나누는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

 

  • 5도

상설 행정 기관이 없는 일반 행정 단위로서, 안찰사가 파견되어 도내의 지방을 순찰. 도 아래, 주와 군⋅현이 설치되고 지방관이 파견

 

  • 양계

북방의 국경 지대에는 동계⋅북계의 양계를 설치하여 병마사를 파견. 국방상의 요충지에는 진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군사적인 특수 지역이었다.

 

  • 3경

초기의 3경으로 개경(개성), 동경(경주), 서경(평양)을 두었고, 후기에는 개경(개성), 남경(양주목, 서울), 서경(평양)을 둠

 

  • 주현⋅속현

하나의 주현에는 여러 개의 속현과 향, 부곡, 소 등이 소속.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 더 많음.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은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의 행정 지배를 받음

 

  • 향⋅부곡⋅소

특수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는 주현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음. 향⋅부곡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고, 소의 주민은 수공업에 종사

양민이면서 군현민과 구별되는 특수 행정 구역인 향, 부곡, 소에 거주한 주민은 더 많은 세금 부담을 지고 있었다.

발해 경제
  • 목축

솔빈부의 말은 주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 무역

발해의 수출품은 주로 모피, 인삼 등 토산물과 불상, 자기 등 수공업품이었다. 수입품은 귀족의 수요품인 비단, 책 등이었다.

거란도, 영주도를 통해 주변국과 교역하였다.

조선 후기
농민 경제 변화
조선 후기 고구마와 감자가 전래되어 재배

모내기법(이앙법)을 확대하여 벼와 보리의 이모작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증가

광작 – 모내기법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손을 덜 수 있게 되자, 농민은 경작지의 규모를 확대

상품 작물 재배 – 쌀, 목화, 채소, 담배, 인삼 등을 재배하여 판매

수확량의 반(타조법)을 내던 소작료도 일정 액수(도조법)를 곡물이나 화폐로 내도록 하는 변화가 나타남

타조법: 일정 비율로 소작료를 내는 방식

도조법: 일정 액수를 소작료로 내는 방식

조선 후기
민영 광산의 증가
  • 정부 독점 채굴

광산은 본래 정부가 독점하여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였다.

 

  • 민영 광산 채굴 허용

정부는 17세기 중엽부터 설점수세제를 시행하여 민간인에게 광산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에 의한 광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설점수세제

조선 후기 정부 주도로 설점(設店)하여 광물 채굴을 허가하고 세금을 거둔 제도

 

  • 잠채

광산의 개발은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몰래 채굴하는 잠채도 성행하였다.

 

  • 덕대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덕대(德大)

광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고 광물을 채굴하여 광산을 경영하는 사람

조선 후기
중계 무역
  • 개시와 후시
    • 개시

조선 후기 중국, 일본 등을 상대로 공적으로 열었던 대외 교역 시장이었다.

압록강 하류에서 열리는 중강 개시와 함경도의 회령 개시 및 경원 개시, 동래의 왜관 개시 등이 열렸다.

 

    • 후시

조선 후기 사상들이 전개한 밀무역이었다.

조선에서 중국으로 사신을 보낼 때 중국의 회동관에서 이루어진 회동관 후시, 중강에서 이루어진 중강 후시, 의주 맞은편의 책문에서 이루어진 책문 후시가 대표적이다.

또 함경도 경원 등에서 야인들과 거래한 북관 후시, 부산 등의 왜관에서 왜인들과 거래한 왜관 후시가 있었다.

 

  • 청과의 무역

17세기 중엽부터 청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공적으로 허용된 무역인 개시와 사적인 무역인 후시가 이루어졌다.

청에서 수입하는 물품은 비단, 약재, 문방구 등이었고, 수출하는 물품은 은, 종이, 무명, 인삼 등이었다.

 

  • 일본과의 무역

17세기 이후로 일본과의 관계가 점차 정상화되면서 왜관 개시를 통한 대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선은 인삼, 쌀, 무명 등을 팔고, 청에서 수입한 물품들을 넘겨주는 중계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은, 구리, 황, 후추 등을 수입하였다.

 

  • 대표적 상인

이러한 국제 무역에서 사적인 무역이 허용되면서 상인이 무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 중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상인은 의주의 만상과 동래의 내상이었으며, 개성의 송상은 양자를 중계하며 큰 이득을 남기기도 하였다. 특히, 의주의 만상은 대중국 무역을 주도하면서 재화를 많이 축적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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