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6 5급 언어논리 4책형 1번 해설 – 고려 현종 거란 하공진

개요

다음은 2016년 국가공무원 5급 언어논리영역 4책형 1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1.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려 현종 1년 11월 16일 거란의 왕 성종은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에 쳐들어왔다. 이때 행영도통사 강조가 지휘하는 고려의 주력군은 통주성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거란군이 다가오자 통주성 남쪽으로 나와 세 부대로 나누어 진을 쳤다. 강조는 칼과 창으로 무장한 수레인 검거를 진에 배치해 두었다가 거란군이 쳐들어오면 검거로 포위하고, 또 세 부대가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거란군을 얕보게 된 강조는 여유를 부리다 결국 거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성종은 포로로 잡혀온 강조의 결박을 풀어주며 자신의 신하가 되라고 요구하였다. 강조는 “나는 고려인이다. 어찌 너의 신하가 되겠는가?”라고 답하였고, 거란왕이 재차 묻자 똑같이 대답하였다. 거란왕은 살을 찢는 가혹한 고문을 가해 강조를 죽였다.

강조의 죽음으로 고려의 주력군이 패전하자 거란군의 남침 속도는 빨라졌고, 현종은 수도인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양주에 다다랐을 무렵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거란군과 평화 협상을 하기 위한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거란군의 선봉이 창화현에 이르자 하공진은 거란군을 찾아가 철수를 요구하였다.

이듬해 정월에 개경이 함락되었다. 거란군은 개경에서 약탈, 살인, 방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궐과 대묘, 관공서는 물론 일반 민가까지 모두 불살라 폐허로 만들었다. 이를 목격한 하공진은 거란왕을 만나 거란군의 철수를 거듭 요청하였다. 성종은 그 요청을 받아들여 철수하였으나, 고려의 사신들을 볼모로 잡아갔다.

거란으로 끌려간 하공진은 고려로 탈출하기 위해 몰래 시장에서 말을 사서 고려로 가는 길에 차례로 배치해 두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발각되었고 거란왕은 하공진을 붙잡아 심문하였다. 하공진은 “나는 고려에 대해서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살아서 거란을 섬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거란왕은 하공진의 충성에 감동하여 이제까지의 잘못을 용서할 테니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요구하였다. 회유가 계속될수록 하공진은 단호한 태도를 취하였고, 거란왕을 모욕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화가 난 거란왕은 하공진을 처형하였다. 그가 최후를 마친 날은 현종 2년 12월이었다.

① 거란군에 사신으로 파견된 하공진은 창화현에서 거란왕을 만나 거란군의 철수를 요청하였다.

②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한 지 석 달이 되지 않아 거란군은 고려 수도를 함락시켰다.

③ 볼모로 거란에 끌려간 하공진과 고영기는 탈출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였다.

④ 통주성 근처에서 거란군에게 패전한 고려의 주력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다.

⑤ 거란왕을 모욕하는 말을 한 하공진은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처형되었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거란군에 사신으로 파견된 하공진은 창화현에서 거란왕을 만나 거란군의 철수를 요청하였다.

거란군의 선봉이 창화현에 이르자 하공진은 거란군을 찾아가 철수를 요구하였다.

하공진이 창화현에서 거란왕을 만났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한 지 석 달이 되지 않아 거란군은 고려 수도를 함락시켰다.

고려 현종 1년 11월 16일 거란의 왕 성종은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에 쳐들어왔다.

이듬해 정월에 개경이 함락되었다.

거란군은 11월에 고려에 쳐들어왔고, 이듬해 정월인 1월에 개경이 함락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볼모로 거란에 끌려간 하공진과 고영기는 탈출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였다.

현종은 수도인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양주에 다다랐을 무렵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거란군과 평화 협상을 하기 위한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거란으로 끌려간 하공진은 고려로 탈출하기 위해 몰래 시장에서 말을 사서 고려로 가는 길에 차례로 배치해 두었다.

고영기는 평화 협상을 위해 하공진과 함께 거란군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는 언급만 있을 뿐, 하공진과 함께 탈출하기 위해 서로 협력했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통주성 근처에서 거란군에게 패전한 고려의 주력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다.

고려의 주력군은 통주성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거란군이 다가오자 통주성 남쪽으로 나와 세 부대로 나누어 진을 쳤다. 강조는 칼과 창으로 무장한 수레인 검거를 진에 배치해 두었다가 거란군이 쳐들어오면 검거로 포위하고, 또 세 부대가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거란군을 얕보게 된 강조는 여유를 부리다 결국 거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거란군에게 패전한 고려의 주력군이 남쪽으로 후퇴하였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거란왕을 모욕하는 말을 한 하공진은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처형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발각되었고 거란왕은 하공진을 붙잡아 심문하였다. 하공진은 “나는 고려에 대해서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살아서 거란을 섬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거란왕은 하공진의 충성에 감동하여 이제까지의 잘못을 용서할 테니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요구하였다. 회유가 계속될수록 하공진은 단호한 태도를 취하였고, 거란왕을 모욕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화가 난 거란왕은 하공진을 처형하였다.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처형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2016 5급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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