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11번 해설 – 동학 농민 봉기

11번 문제

11. 밑줄 친 ‘창의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①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

②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③ 한산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④ 인천 상륙 작전을 수행하였다.

⑤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갑오년인 1894년에 발생한 동학 농민 운동을 갑오 농민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횡포와 착취를 저지르며 농민들을 수탈했다. 1894년 1월 농민들은 전봉준을 지도자로 하여 봉기하였다(고부 농민 봉기). 전봉준 등은 사발통문을 돌려 세력을 모았다. 이에 정부가 새로운 군수를 임명하자 농민들은 군수의 다짐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하였다.

3월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봉기에 참여한 농민들을 동학교도라는 죄목으로 잡아들이고 탄압하자 농민들의 분노가 다시 거세졌다. 전봉준은 손화중과 함께 전라도 각지에서 농민군을 모아 무장에서 대규모로 봉기하였다(제1차 농민 봉기).

농민군은 전주성까지 점령하였다.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이 틈을 이용하여 일본은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정부와 화약을 맺었다. 이를 전주 화약이라고 한다.

청이 조선에 파병하게 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조선 정부는 청⋅일 양국에 철병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1894년 7월 23일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 간섭을 하였다(군국기무처 설치). 경복궁 점령 이틀 뒤, 마침내 풍도 해전을 시작으로 청⋅일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894년 9월 일본군이 청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내정 간섭하자, 농민군은 다시 봉기하여 외세를 몰아 내기 위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제2차 농민 봉기).

 

①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베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였다.

파병 규모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32만여 명에 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645년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는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한산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인천 상륙 작전을 수행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894년 11월 남접 농민군과 북접 농민군은 논산에 집결하였다가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으나, 근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패하여 큰 희생을 치렀다.

결국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1학년도(2020)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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