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2번 해설 – 임오군란

12번 문제

12. 밑줄 친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청군이 개입하여 진압되었다.

② 동학 교조의 신원을 요구하였다.

③ 단발령 시행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났다.

④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⑤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구식 군대는 군제 개혁 후에 설립된 신식 군대(별기군)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13개월 만에 급료로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이에 분노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1882년).

임오군란이 진압된 후 일본은 조선 내의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했으며,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다(1882년).

 

① 청군이 개입하여 진압되었다.

임오군란 당시 민씨 세력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한 청이 군란을 진압한 후, 흥선 대원군을 군란의 책임자로 지목하여 강제로 데려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동학 교조의 신원을 요구하였다.

동학교도들은 1892년부터 충청도 공주, 전라도 삼례, 한성 등에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단발령 시행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났다.

1895년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1907년 일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와 일부 군인들이 군사 정변을 일으켜 헌정을 중단하였다.

군사 정변 세력은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구성하고 군정을 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학년도(2022) 9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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