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9번 해설 – 여운형

19번 문제

19.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①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②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였다.

③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였다.

④ 좌우 합작 위원회를 주도하였다.

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여운형에 대한 내용이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9년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①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였다.

고려 말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다.

1388년 이성계는 요동 정벌 도중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본격적인 개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였다.

고려 승려 지눌은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독경과 선 수행, 노동에 고루 힘쓰자는 개혁 운동인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좌우 합작 위원회를 주도하였다.

1946년 7월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된 후,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은 정읍에서 공개적으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정읍 발언’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학년도(2022) 9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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