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3번 해설 – 고려 몽골과의 전쟁

3번 문제

3. 밑줄 친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 을유년 1월 계미일에 몽골 사신이 압록강을 건너 돌아가다가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신묘년 8월 임오일에 몽골이 이를 구실로 전쟁을 시작하였다.

◦ 신해년 9월 임오일에 새로 만든 팔만대장경판에 분향하였다. 몽골과의 전쟁이 이어지던 중 임진년에 초조대장경판이 불타 없어져 새로운 대장경판을 만들고자 하였는데, 16년 만에완성한 것이다.

① 대가야가 멸망하였다.

② 수도가 강화도로 옮겨졌다.

③ 미쓰야 협정이 체결되었다.

④ 인천 상륙 작전이 전개되었다.

⑤ 황국 중앙 총상회가 조직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1225년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다.

이후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 만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① 대가야가 멸망하였다.

562년 신라 진흥왕은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수도가 강화도로 옮겨졌다.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미쓰야 협정이 체결되었다.

1925년 일제와 만주 군벌은 공동으로 독립군을 소탕하고 체포된 독립군을 일본측에 인도한다는 내용의 미쓰야 협정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인천 상륙 작전이 전개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황국 중앙 총상회가 조직되었다.

1898년 서울 상인들은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여, 외국인의 불법적인 내륙 상업 활동을 엄단할 것을 요구하며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학년도(2022)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