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위화도 회군

17번 문제

17. 다음 상황이 전개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① (가)

② (나)

③ (다)

④ (라)

⑤ (마)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말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다.

1388년 이성계는 요동 정벌 도중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본격적인 개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최충헌 집권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돠었다.

 

강화 천도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강화 천도).

 

제1차 일본 원정

1274년 고려 충렬왕 때 몽골은 제1차 일본 원정을 단행했다.

 

쌍성총관부 탈환

1356년 공민왕 때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했다.

 

과전법 제정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우왕과 최영을 몰아 내고 실권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문란한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경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과전법(고려 공양왕 1391년)을 실시하였다.

 

제1차 왕자의 난

1398년 조선 태조 때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제1차 왕자의 난 발생의 원인은 건국에 공이 큰 신의왕후 한씨 소생 왕자들(이방원 등)을 제치고, 계비 강씨의 막내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것에 대한 강한 불만 때문이었다.

 

정답은 ④번이다.

 

조선의 건국
  • 위화도 회군

고려 말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1388년)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본격적인 개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 신진 사대부의 분화와 갈등

정도전 등 급진 개혁파는 창왕을 몰아 내고 공양왕을 세우면서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이들은 역성혁명을 반대하던 정몽주를 비롯한 온건 개혁파를 제거하였다.

 

  • 과전법 시행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우왕과 최영을 몰아 내고 실권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문란한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경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과전법(1391년)을 실시하였다.

 

  • 조선 건국

신흥 무인 세력과 급진 개혁파는 새 나라 건설을 반대한 정몽주 등을 제거하고, 마침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를 세웠다(1392년).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 이연년 형제의 난

1237년, 고려 고종 때 원율과 담양 지역에서 이연년 형제가 봉기를 일으켰다. 김경손이 이를 진압했다.

고려
몽골의 침입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1225년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다.

 

  • 몽골의 1차 침입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 몽골의 2차 침입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 몽골의 3차 침입

1236년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송문주가 죽주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 몽골의 5차 침입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 피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 개경 환도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고려 원종 때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 삼별초의 항쟁

1270년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으로 구성

원의
내정간섭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 원의 일본 원정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 정동행성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 관제 변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 영토 상실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 공녀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 응방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 부마국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조선 태종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하여 개국 공신 세력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 6조 직계제

태종은 도평의사사를 없애고 의정부를 두면서 그 정치적 권한을 약화시키고, 6조 직계제를 채택하였다. (6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안을 국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제도)

  • 사간원 독립

언론 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였다.

  • 사병 혁파

사병을 없애 왕이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면서 친위 군사를 늘렸다.

  • 조선 8도

태종 13년에 전국을 8도(道)로 나누었다.

  • 양전 사업

태종은 양전 사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 호패법

호패법을 실시하여 전국의 인구 동태를 파악하였으며, 이를 조세 징수와 군역부과에 활용하였다. 16세 이상 남자에게 발급했다. 거주지와 이름을 적었다.

호패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때에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 계미자

태종 때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 신문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사섬서

사섬서를 설치하여 저화를 발행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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