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15 5급 언어논리 인책형 2번 해설 – 족보 성종 성화보 안동 권씨

개요

다음은 2015년 국가공무원 5급 언어논리영역 인책형 2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2.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존하는 족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성종 7년(1476)에 간행된 안동 권씨의 <성화보(成化譜)>이다. 이 족보의 간행에는 달성 서씨인 서거정이 깊이 관여하였는데, 그가 안동 권씨 권근의 외손자였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 족보의 가장 큰 특징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성화보>에는 모두 9,120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안동 권씨는 9.5퍼센트인 867명에 불과하였다. 배우자가 다른 성씨라 하더라도 절반 정도는 안동 권씨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것은 당시의 친족 관계에 대한 생각이 이 족보에 고스란히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성화보>에서는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출생 순서대로 기재하였다. 이러한 관념이 확대되어 외손들도 모두 친손과 다름없이 기재되었다. 안동 권씨가 당대의 유력 성관이고, 안동 권씨의 본손은 물론이고 인척 관계의 결연으로 이루어진 외손까지 상세히 기재하다 보니, 조선 건국에서부터 당시까지 과거 급제자의 절반 정도가 <성화보>에 등장한다.

한편 <성화보>의 서문에서 서거정은 매우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자고로 종법이 없고 족보가 없어서 비록 거가대족(巨家大族)이라도 기록이 빈약하여 겨우 몇 대를 전할 뿐이므로 고조나 증조의 이름과 호(號)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라고 한 것이다. <성화보> 역시 시조 쪽으로 갈수록 기록이 빈약한 편이다.

<성화보> 이후 여러 성관의 족보가 활발히 편찬되면서 양반들은 대개 족보를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계의 내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조상의 계보와 사회적 지위를 윤색하거나 은폐하기도 하였다. 대다수의 양반 가계가 족보를 편찬하면서 중인은 물론 평민들도 족보를 보유하고자 하였다.

① 족보를 보유하면 양반 가문으로 인정받았다.

② 조선시대 이전에는 가계 전승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③ <성화보>는 조선 후기와 달리 모계 중심의 친족 관계를 반영하였다.

④ <성화보> 간행 이후 족보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거가대족의 족보는 정확하게 작성되었다.

⑤ 태조부터 성종 때까지 유력 성관과 친인척 관계인 과거 급제자들이 많았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족보를 보유하면 양반 가문으로 인정받았다.

대다수의 양반 가계가 족보를 편찬하면서 중인은 물론 평민들도 족보를 보유하고자 하였다.

중인은 물론 평민들도 족보를 보유하고자 하였다는 내용만 있을 뿐, 이들이 족보를 보유하면 양반 가문으로 인정받았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조선시대 이전에는 가계 전승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성화보>의 서문에서 서거정은 매우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자고로 종법이 없고 족보가 없어서 비록 거가대족(巨家大族)이라도 기록이 빈약하여 겨우 몇 대를 전할 뿐이므로 고조나 증조의 이름과 호(號)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라고 한 것이다.

비록 거가대족(巨家大族)이라도 기록이 빈약하여 겨우 몇 대를 전한다는 내용은 있지만, 조선시대 이전에는 가계 전승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성화보>는 조선 후기와 달리 모계 중심의 친족 관계를 반영하였다.

그것은 당시의 친족 관계에 대한 생각이 이 족보에 고스란히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성화보>에서는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출생 순서대로 기재하였다. 이러한 관념이 확대되어 외손들도 모두 친손과 다름없이 기재되었다. 안동 권씨가 당대의 유력 성관이고, 안동 권씨의 본손은 물론이고 인척 관계의 결연으로 이루어진 외손까지 상세히 기재하다 보니, 조선 건국에서부터 당시까지 과거 급제자의 절반 정도가 <성화보>에 등장한다.

<성화보>에 안동 권씨의 본손은 물론이고 인척 관계의 결연으로 이루어진 외손까지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는 내용은 있지만, 모계 중심의 친족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는 언급은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성화보> 간행 이후 족보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거가대족의 족보는 정확하게 작성되었다.

<성화보> 이후 여러 성관의 족보가 활발히 편찬되면서 양반들은 대개 족보를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계의 내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조상의 계보와 사회적 지위를 윤색하거나 은폐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태조부터 성종 때까지 유력 성관과 친인척 관계인 과거 급제자들이 많았다.

현존하는 족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성종 7년(1476)에 간행된 안동 권씨의 <성화보(成化譜)>이다.

안동 권씨가 당대의 유력 성관이고, 안동 권씨의 본손은 물론이고 인척 관계의 결연으로 이루어진 외손까지 상세히 기재하다 보니, 조선 건국에서부터 당시까지 과거 급제자의 절반 정도가 <성화보>에 등장한다.

조선 성종 7년(1476)에 간행된 안동 권씨의 족보 <성화보(成化譜)>에는 당대의 유력 성관이었던 안동 권씨의 본손은 물론이고 인척 관계의 결연으로 이루어진 외손까지 상세히 기재하다 보니, 조선 태조부터 성종 때까지 과거 급제자의 절반 정도가 <성화보>에 등장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2015 5급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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