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24 5급 언어논리 나책형 21번 해설 – 신라 진골 성골 동륜 진평왕

개요

다음은 2024년 국가공무원 5급 언어논리영역 나책형 21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21.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신라에는 수도 서라벌에 적을 둔 사람들을 6개의 두품과 진골, 성골로 나누는 신분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성골과 진골은 두품 신분이 누릴 수 없는 특권을 가진 지배층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현존하는 사료에는 성골과 진골을 가르는 기준이 나타나 있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어떤 사람이 성골 신분을 가질 수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를 진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한때 부모가 모두 왕의 자손이면 성골이고 한쪽만 그러하면 진골이라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지만, 부모가 모두 왕의 자손임에도 진골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잘못된 견해임이 확인되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성골은 신라 제26대 진평왕이 처음 만들어낸 신분이다. 진평왕은 숙부인 진지왕을 몰아내고 즉위했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동륜이 살아 있었다면 왕이 될 수 없었으나 동륜이 일찍 사망함에 따라 진흥왕의 뒤를 잇게 되었다. 동륜의 아들인 진평왕은 이에 불만을 품고 세력을 키워 진지왕을 내쫓은 뒤 왕위에 올랐다. 진지왕은 폐위 직후 죽었지만, 그 아들은 살아서 자식을 남겼다. 만일 이 진지왕의 아들 또는 손자가 반란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왕위가 다시 진지왕의 자손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진평왕은 이러한 사태를 막고자 성골이라는 신분을 만들어낸 뒤 성골만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가 성골 신분을 부여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부인, 자기 딸, 그리고 자기 친형제와 그가 낳은 딸뿐이었다. 그는 앞으로 태어날 자기 아들에게도 성골 신분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진평왕은 끝내 아들을 두지 못했고, 딸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선덕여왕이다.

진평왕 즉위 전 신라의 최고 신분은 진골이었고, 진골에서 왕이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진평왕이 성골에게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한 바람에 선덕여왕 사후 왕위를 이을 사람은 진평왕의 조카인 진덕여왕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진평왕의 부인과 딸, 친형제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이후 진덕여왕마저 죽자 성골이 없어졌고, 결국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가 왕이 되었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 용수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를 두고 진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성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김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첫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① 동륜은 왕족이었지만 진골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② 진덕여왕은 천명부인이 낳은 딸이기 때문에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③ 동륜은 반란을 일으켜 진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조카인 진평왕에 의해 폐위되었다.

④ 김춘추는 진평왕의 외손자로 태어났으며 성골 신분에 들지 못한 인물이었다.

⑤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는 두품 출신이었으므로 천명부인과 결혼할 수 있었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동륜은 왕족이었지만 진골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동륜이 살아 있었다면 왕이 될 수 없었으나 동륜이 일찍 사망함에 따라 진흥왕의 뒤를 잇게 되었다.

동륜은 일찍 사망함에 따라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진덕여왕은 천명부인이 낳은 딸이기 때문에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진평왕은 이러한 사태를 막고자 성골이라는 신분을 만들어낸 뒤 성골만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가 성골 신분을 부여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부인, 자기 딸, 그리고 자기 친형제와 그가 낳은 딸뿐이었다. 그는 앞으로 태어날 자기 아들에게도 성골 신분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진평왕은 끝내 아들을 두지 못했고, 딸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선덕여왕이다.

진평왕 즉위 전 신라의 최고 신분은 진골이었고, 진골에서 왕이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진평왕이 성골에게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한 바람에 선덕여왕 사후 왕위를 이을 사람은 진평왕의 조카인 진덕여왕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진평왕의 부인과 딸, 친형제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이후 진덕여왕마저 죽자 성골이 없어졌고, 결국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가 왕이 되었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 용수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진덕여왕은 진평왕의 조카이고, 김춘추가 천명부인이 낳은 아들이다.

진평왕이 자기 친형제와 그가 낳은 딸에게 성골 신분을 부여했기 때문에 진평왕의 조카인 진덕여왕이 성골로서 왕위에 오를 수 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동륜은 반란을 일으켜 진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조카인 진평왕에 의해 폐위되었다.

동륜의 아들인 진평왕은 이에 불만을 품고 세력을 키워 진지왕을 내쫓은 뒤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은 동륜의 조카가 아닌 아들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김춘추는 진평왕의 외손자로 태어났으며 성골 신분에 들지 못한 인물이었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 용수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를 두고 진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성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김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첫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김춘추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 낳은 아들이므로, 진평왕의 외손자이다.

천명부인은 진평왕의 딸로서 성골 신분을 부여받았지만 김춘추는 성골 신분을 부여받지 못하고, 진골로서 왕위에 올랐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는 두품 출신이었으므로 천명부인과 결혼할 수 있었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 용수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를 두고 진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성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김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첫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용수가 두품 출신이라고 유추할 만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2024 5급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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