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후삼국 통일 과정

10번 문제

10. 다음 상황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① 궁예가 광평성을 설치하였다.

② 장문휴가 당의 등주를 공격하였다.

③ 신숭겸이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④ 왕건이 일리천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⑤ 김헌창이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935년 3월,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켰다.

 

① 궁예가 광평성을 설치하였다.

904년 궁예는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장문휴가 당의 등주를 공격하였다.

발해 무왕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신숭겸이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켰다(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왕건이 일리천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를 당했다. 후백제가 멸망하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김헌창이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통일 신라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822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904년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함.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3월,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킴.
  • 935년 6월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5년 11월,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당함.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발해 무왕
  • 732년,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 공격
  •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 96각간의 난

768년 혜공왕 때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각간들이 군사를 일으켜 권력 다툼을 벌였다.

 

  • 김헌창의 난(822년)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822년).

 

  • 장보고의 난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적고적의 난

지방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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