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통일 신라 신문왕

7번 문제

7.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을 편찬하였다.

②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③ 인사를 담당하는 위화부를 창설하였다.

④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⑤ 시장을 감독하기 위해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의 (가)에 해당하는 왕은 통일 신라 신문왕이다.

신문왕 때 만파식적에 대한 전설이 전해진다.

신문왕 때 감은사가 완공되었다.

 

①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을 편찬하였다.

888년 진성여왕 시기,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을 편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신문왕 때 진골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인사를 담당하는 위화부를 창설하였다.

581년 진평왕 때 위화부와 영객부는 신라의 관청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삼국 통일 전, 신라 법흥왕 때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시장을 감독하기 위해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삼국 통일 전, 신라는 6세기 초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신라
신문왕
  • 김흠돌의 난(618년)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
  •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
  • 만파식적
  •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인을 포함한 군대인 9서당을 편성
  • 감은사 건립
남북국의
역사 편찬과
유학의 보급
  • 역사 편찬

신라의 대표적 문장가인 김대문은 화랑의 전기를 모은 화랑세기, 유명한 승려의 전기를 모은 고승전, 한산주 지방의 지리지인 한산기, 신라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 유학자

신라의 유학자는 6두품 출신이 많았다.

    • 강수

외교 문서를 잘 지은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외교 문서인 청방인문표를 작성하였다.

    • 설총

설총은 원효 대사의 아들로 유교 경전에 조예가 깊었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이두를 정리하여 한문 교육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또한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임금도 도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함을 주장하였다.

    • 최치원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후 귀국하여 통일 신라의 진성왕에게 개혁안 10여 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문장과 저술을 남겼다.

중국 황소의 난이 발생했을 때 격황소서를 지어 세상에 이름을 떨치다.

    • 삼대목

888년 진성여왕 시기,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을 편찬하였다.

 

  • 발해

발해는 당에 유학생을 파견하였는데, 당의 빈공과에 급제한 사람이 여러 명 나왔다.

신라
법흥왕
  • 병부의 설치, 율령 반포, 공복의 제정
  • 6세기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 때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
  • 골품 제도를 정비
  • 진골 귀족 회의의 대표자인 상대등을 두어 중앙 집권 국가의 모습을 갖춤
  •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
  • 532년 이사부에 명하여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
  • 17관등제를 완비
삼국의 경제
  • 초기 수취 제도

주변의 소국과 전쟁을 벌여 정복한 지역에는 그 지역의 지배자를 내세워 토산물을 공물로 수취하였다.

삼국은 전쟁 포로를 귀족이나 병사에게 노비로 나누어 주기도 하고, 군공을 세운 사람에게 일정 지역의 토지와 농민을 식읍으로 주었다.

 

  • 합리적 수취 제도 마련

조세: 재산의 정도에 따라 호를 나누어 곡물과 포를 거두었다.

공납: 그 지역의 특산물을 거두었다.

역: 왕궁, 성, 저수지 등을 만드는 데에 노동력이 필요하면 국가에서 15세 이상의 남자를 동원하였다.

 

  • 농업 시책과 구휼 정책

농업 시책: 철제 농기구를 일반 농민에게 보급하여 소를 이용한 우경을 장려하고, 황무지 개간을 권장하여 경작지를 확대하였으며, 저수지를 만들거나 수리하여 가뭄에 대비하였다.

구휼 정책: 홍수, 가뭄 등으로 흉년이 들면 백성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거나 빌려 주었다. 고구려 고국천왕 때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백제에서는 곡물을 대여하고 이자를 받은 내용을 좌관대식기에 남겼다.

 

  • 동시전 설치

신라는 5세기 말 경주에 시장을 열어 물품을 매매하게 하였고, 6세기 초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 귀족의 경제 생활

삼국 시대의 귀족은 본래 스스로 소유하였던 토지와 노비 외에도 국가에서 준 녹읍, 식읍, 노비를 가지고 있었다. 귀족은 전쟁에 참여하면서 토지와 노비 등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 녹읍(祿邑)

국가에서 관료 귀족에게 지급한 일정 지역의 토지로서, 조세를 수취할 뿐만 아니라 그 토지에 딸린 노동력을 징발할 수 있었다.

  • 식읍(食邑)

국가에서 왕족, 공신 등에게 준 토지와 가호로서, 조세를 수취하고 노동력을 징발할 권리를 부여하였다.

 

  • 농민의 경제 생활

농민은 자기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거나 부유한 자의 토지를 빌려 경작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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