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발해

9번 문제

9.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였다.

②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를 마련하였다.

③ 정사암에 모여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였다.

④ 관리 선발을 위해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⑤ 청연각과 보문각을 설치하여 학문 연구를 장려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정효 공주는 발해의 인물이다.

 

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였다.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를 마련하였다.

골품 제도는 신라의 신분 제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정사암에 모여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였다.

정사암 회의는 재상의 선출 등 국가의 주요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하던 백제의 귀족 회의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관리 선발을 위해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통일 신라 원성왕 때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청연각과 보문각을 설치하여 학문 연구를 장려하였다.

고려 예종 때 청연각과 보문각을 설치하여 학문 연구를 장려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남북국의 고분과
고분 벽화
  • 통일 신라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유행하였다.

고분 양식은 거대한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점차 규모가 작은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

봉토 주위를 둘레돌로 두르고, 12지 신상을 조각하는 독특한 양식이 새롭게 나타났다.

 

굴식 돌방무덤

돌로 1개 이상의 방을 만들고 그것을 통로로 연결한 무덤으로, 일반적으로 앞방과 널방으로 구분하고, 벽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돌무지덧널무덤

신라에서 주로 만든 무덤으로 지상이나 지하에 시신과 껴묻거리를 넣은 나무덧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냇돌을 쌓은 다음에 흙으로 덮었다. 도굴이 어려워 많은 껴묻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돌무지덧널무덤

 

  • 발해

정혜 공주 묘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모줄임 천장 구조가 고구려 고분과 닮았다.

정효 공주 묘에서는 묘지와 벽화가 발굴되었다.

정혜 공주 묘 비석

정효 공주 묘

발해 통치 체제
  • 중앙 정치 조직 – 3성 6부,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 좌·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
  • 최고 행정 기관인 정당성의 장관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
  • 중앙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 설치
  •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
  •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둠
  • 서적 관리, 주요 문서 작성 등을 위해 문적원을 설치
  • 관리의 비리 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중정대 설치
신라
사회 모습
  • 화백회의

신라는 여러 부족의 대표가 함께 모여 정치를 운영

 

  • 골품 제도

신라에는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골품 제도가 있었다. 골품은 신라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하였다.

자료: 국사 편찬 위원회

 

  • 화랑도

진흥왕 때 국가 차원에서 그 활동을 장려하여 조직이 확대되었으며, 진평왕 때 원광은 청소년에게 세속 5계를 가르쳐 마음가짐과 행동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삼국
통치
체제
  • 고구려

제가 회의 – 고구려 초기에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했던 귀족 회의

대대로(또는 막리지)가 국정을 총괄

지방의 여러 성에 욕살, 처려근지 등을 둠

 

  • 백제

정사암 회의 – 재상의 선출 등 국가의 주요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하던 백제의 귀족 회의

6좌평제와 16관등제. 6좌평 아래에 달솔 등의 관등이 있었다.

상좌평이 국정을 총괄

무령왕 때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

 

  • 신라

화백 회의 – 신라에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귀족 회의체

17관등제

골품 제도 – 신라인의 일상 생활까지 규제

신라
원성왕
  •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를 채용하는 독서삼품과를 마련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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