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 문제
21.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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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조광조 일파의 건의로 폐지되었다.
② 좌수와 별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③ 풍기 군수 주세붕이 처음 설립하였다.
④ 대사성 이하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을 두었다.
⑤ 매향(埋香)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조선의 유향소에 대한 내용이다.
지방의 각 군⋅현에서는 그 곳의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유향소(뒤에 향청)를 운영하였다.
좌수와 별감 등의 향임직을 두었다.
유향소에서는 수시로 향회를 소집하여 지방의 여론을 모으고, 백성들을 교화하였으며, 수령에 대한 자문과 함께 수령의 비행을 고발하는 등 오늘날의 지방 의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사족(양반)은 그들의 총회인 향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고 지방민을 통제하였다.
① 조광조 일파의 건의로 폐지되었다.
소격서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좌수와 별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풍기 군수 주세붕이 처음 설립하였다.
서원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대사성 이하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을 두었다.
성균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매향(埋香)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향도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 조선 지방 행정 조직 |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고을의 크기에 따라 지방관의 등급을 조정하고, 작은 군⋅현을 통합하여 전국에 약 330여 개의 군⋅현을 두었다. 군현 아래 면⋅이(里)⋅통을 두었다. 다섯 집을 하나의 통으로 편성하였다. 고려 시대까지 특수 행정 구역이었던 향, 부곡, 소도 일반 군⋅현으로 승격시키거나 포함시켰다.
조선은 수령을 지휘, 감독하고 백성의 생활을 살피기 위하여 전국 8도에 관찰사를 파견하였고, 수시로 암행어사를 지방에 보내기도 하였다.
조선은 전국의 주민을 국가가 직접 지배하기 위하여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였다. 수령은 왕의 대리인으로, 지방의 행정⋅사법⋅군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향리는 고려 시대에 비해 지위가 낮아져 수령의 행정 실무를 보좌하는 세습적인 아전으로 격하되었다. 향리는 수령의 지시를 받아 지방 행정의 실무를 맡았으며, 이들은 6방으로 나뉘어 각기 업무를 맡아 처리하였다.
지방의 각 군⋅현에서는 그 곳의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유향소(뒤에 향청)를 운영하였다. 좌수와 별감 등의 향임직을 두었다. 유향소에서는 수시로 향회를 소집하여 지방의 여론을 모으고, 백성들을 교화하였으며, 수령에 대한 자문과 함께 수령의 비행을 고발하는 등 오늘날의 지방 의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사족(양반)은 그들의 총회인 향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고 지방민을 통제하였다. 향청, 향당, 향소청 등으로도 불리었다.
서울에는 경재소를 두고 그 지방 출신의 중앙 고관을 책임자로 하여 유향소와 정부 사이의 연락 관계를 긴밀하게 하고, 유향소를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게 하였다. 관할 유향소 임원의 임명권을 행사하였다. 1603년 경재소가 혁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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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림의 성장과 사화 |
향촌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굳히던 사림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에 참여함으로써 훈구 세력을 견제하였다. 김종직과 그 문인이 성종 때에 중앙에 진출하면서 사림은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사림은 훈구 세력이 중앙 집권 체제를 강조한 데 비해, 향촌 자치를 내세우며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강조하였다. 또한 사림 세력은 서원과 향약을 통하여 향촌 사회에서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과거를 통하여 중앙에 진출한 사림 세력은 주로 이조 전랑과 3사의 언관직을 차지하고 훈구 세력의 비리를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였다.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의 대립으로 사화가 발생하였다.
성종을 이어 즉위한 연산군은 훈구 대신과 사림을 모두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특히, 사림 세력의 분방한 언론 활동을 억제하였다. 무오사화(1498년)는 조선에서 발생한 첫 번째 사화로, 김일손의 사초에 불손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발생했다. 김일손의 사초 가운데 문제가 된 부분은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수록한 일이었는데, <조의제문>은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 즉 의제를 조선 단종에 비유하여 세조의 찬탈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연산군의 전횡이 심해지자, 3사는 연산군에 대한 간쟁의 수위를 높여 갔고, 대신들 또한 연산군의 실정에 대해 논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결국 연산군은 임금을 능멸하는 행위와 폐비 윤씨 사건의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갑자사화를 일으켰다(1504년).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져 김굉필 등이 처형되었다.
연산군은 이후 언론을 극도로 탄압하고 재정을 낭비하는 등 폭압적인 정치를 단행하다가 결국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1506년). 중종은 사림을 다시 등용하여 유교 정치를 일으키려 하였다. 당시 명망이 높았던 조광조가 중용되면서 천거제의 일종인 현량과를 통하여 사림이 대거 등용되었다. 이들은 3사의 언관직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공론이라 표방하면서 급진적 개혁을 추진해 나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조광조의 청렴함과 원리 원칙에 충실한 태도는 남곤⋅심정 등으로 대표되는 훈구 재상들과의 대립을 불러왔다. 이들의 위훈을 삭제하면서 대립 양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공신들의 반발로 말미암아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은 대부분 제거되었다(1519년).
중종이 훈구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시 사림을 등용하기도 하였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끼리의 권력 다툼에 윤임이 제거당하고, 사림 세력 역시 정계에서 밀려났다(1545년).
1547년 조선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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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향약과 서원 |
지방 사족은 향촌 사회를 그들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 향약 조직을 만들었다. 향약은 조선 중종 때 조광조가 처음 시행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본래 향촌에서는 마을 단위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는 풍습이 있었다. 향약은 이러한 전통적 공동 조직과 미풍양속을 계승하면서,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한 유교 윤리를 가미하여 교화 및 질서 유지에 알맞게 구성한 것이다. 향약은 조선 사회의 풍속 교화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향촌 사회의 질서 유지와 함께 치안까지 담당하는 등 향촌의 자치 기능을 맡았다. 향약의 보급으로 지방 사림의 지위는 강화되었으나, 지방 유력자가 주민을 위협, 수탈하는 배경을 제공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다. 백운동 서원은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고 이황의 건의로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조선 명종 때 사액을 받아 소수 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6세기 이후 각 지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서원도 향약과 함께 사림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었다. 서원은 유교 윤리를 보급하고 향촌 사림을 결집,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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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교육 기관 |
조선은 고려의 교육 제도를 이어받아 서울에 최고 학부의 구실을 하는 국립 교육 기관인 성균관을 두었다. 성균관의 입학 자격은 생원, 진사를 원칙으로 하였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4학은 중앙의 중등 교육 기관이었다. 4학은 중학, 동학, 남학, 서학이 있었다.
향교는 지방의 중등 교육 기관이었다. 향교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부⋅목⋅군⋅현에 각각 하나씩 설립되었다. 향교에는 그 규모와 지역에 따라 중앙에서 교관인 교수 또는 훈도를 파견하였다.
서당은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사립 교육 기관으로서, 4학이나 향교에 입학하지 못한 선비와 평민의 자제가 교육을 받았다. 교육받는 자의 연령은 대개 8, 9세부터 15, 16세 정도에 이르렀다.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다. 서원에서는 봄⋅가을로 향음 주례를 지냈고, 인재를 모아 학문도 가르쳤다. 서원은 이름난 선비나 공신을 숭배하고 그 덕행을 추모하였고, 유생이 한 자리에 모여 학문을 닦고 연구함으로써 향촌 사회의 교화에 공헌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에서는 서원의 설립을 장려하여 전국 각처에 많은 서원이 세워졌다. 백운동 서원은 조선 명종 때 사액을 받아 소수 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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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향촌 사회 |
향촌 자치를 위하여 설치한 기구가 유향소였다.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향촌 사회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한 기구였다.
경재소는 중앙 정부가 현직 관료로 하여금 연고지의 유향소를 통제하게 하는 제도로서, 중앙과 지방의 연락 업무를 맡았다. 관할 유향소 임원의 임명권을 행사하였다.
군, 현 아래 면, 이(里) 등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몇 개의 자연 촌락으로 구성되었다. 면, 이에는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지 않았다.
촌락은 농민 생활의 기본 단위일 뿐만 아니라 향촌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자연촌으로 존재하면서 동(洞), 이(里)로 편제된 조직이다.
정부는 조선 초기에 자연촌 단위의 몇 개의 이(里)를 면으로 묶은 면리제를 통해, 그리고 17세기 중엽 이후에는 오가작통제를 통하여 촌락 주민에 대한 지배를 원활히 하고자 하였다. 오가작통제는 서로 이웃하고 있는 다섯 집을 하나의 통으로 묶고, 여기에 통수를 두어 통 내를 관장하게 한 것이다.
촌락의 농민 조직으로 두레와 향도가 있었다. 두레는 공동 노동의 작업 공동체였다. 향도는 불교와 민간 신앙 등의 신앙적 기반과 동계 조직 같은 공동체 조직의 성격을 모두 띠었다. 주로 상을 당하였을 때에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서로 돕는 역할을 하였다. 상여를 메는 사람인 상두꾼도 향도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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