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능검 기본 16번 해설 – 고려 구휼 기관

문제

16.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기구로 옳은 것은? [2점]

① 의창

② 박문국

③ 제중원

④ 활인서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시대 의창은 평시에 곡물을 비치하였다가 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는 구휼 기관이었다. 이는 고구려의 진대법과 유사한 것이었다.

 

② 박문국

박문국은 1883년 설치된 기관으로 한성순보를 발행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제중원

1885년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개칭)을 설립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활인서

조선 시대 세워진 동⋅서 활인서는 유랑자의 수용과 구휼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고려
백성의 생활 모습
  • 향도

농민은 일상 의례와 공동 노동 등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공동체 조직의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신앙 조직이었던 향도였다.

향도(香徒)

매향 활동을 하는 무리이다. 매향은 불교 신앙의 하나로, 미륵을 만나 구원받고자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는 활동이다.

  • 의창

평시에 곡물을 비치하였다가 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는 의창이 있었다. 이는 고구려의 진대법과 유사한 것이었다.

 

  • 상평창

개경과 서경 및 각 12목에는 상평창을 두었다.

풍년에는 곡물을 사들이고 흉년에는 곡물을 풀어 물가의 안정을 꾀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 동⋅서 대비원

가난한 백성이 의료 혜택을 받도록 개경에 동⋅서 대비원을 설치하여 환자 진료 및 빈민 구휼을 담당하게 하였다.

 

  • 혜민국

혜민국을 두어 의약을 전담하게 하였다.

 

  • 구제도감·구급도감

각종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구제도감이나 구급도감을 임시 기관으로 설치하여 백성의 구제에 힘썼다.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하였다.

 

  • 혼인과 여성의 지위

고려 시대에는 여자는 18세 전후, 남자는 20세 전후에 혼인을 하였다.

고려 초에 왕실에서는 친족 간의 혼인이 성행하였다. 중기 이후 여러 번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인 형태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 여성의 지위

부모의 유산은 자녀에게 골고루 분배되었으며, 태어난 차례대로 호적에 기재하여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없을 때에는 양자를 들이지 않고 딸이 제사를 지냈으며, 상복 제도에서도 친가와 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사위가 처가의 호적에 입적하여 처가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사위와 외손자에게까지 음서의 혜택이 있었다.

공을 세운 사람의 부모는 물론, 장인과 장모도 함께 상을 받았다.

여성의 재가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그 소생 자식의 사회적 진출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근대 문물의
수용

  • 전신

1885년 서울-인천, 서울-의주 전신선이 가설되었다.

 

  • 우편

1884년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근대적 우편 제도를 실시하려 했으나 갑신정변 이후 중단되었다.

정부가 우체사를 설립하면서 우편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고, 1900년부터는 국제 우편 업무(만국 우편 연합 가입)도 실시하였다.

 

  • 전화

1898년 경운궁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덕률풍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전기

1887년 경복궁에 최초로 전등을 설치하였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 전기 회사인 한성 전기 회사가 설립되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기 사업을 주도하였다.

묘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 전차

1899년 한성 전기 회사는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운행하였다.

 

  • 철도

경인선(1899년),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6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철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 의료 시설
    • 광혜원(제중원) → 세브란스 병원

1885년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개칭)을 설립하였다.

제중원은 나중에 세브란스 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광제원 → 대한의원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건의로 정부가 관립 의학교와 광제원(1900년)을 설립하였는데, 광제원은 대한 의원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 근대 시설
    • 박문국

1883년 박영효의 주도로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였다.

    • 기기창

1883년 기기창에서 서양 무기를 제조하였다.

    • 전환국

1883년 전환국에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였다.

 

  • 건축
    • 독립문

독립문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건립되었다.

 

    • 덕수궁 석조전

르네상스식의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 명동 성당

1898년 중세 고딕식의 건물인 명동 성당이 세워졌다.

조선 전기
사회 정책과
법률 제도
  • 사회 정책

조선은 기본적으로 농본 정책을 실시하여 농민의 안정을 꾀하였다. 국가는 양반 지주들의 토지 겸병을 억제하고, 농민이 토지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농번기에 안정적으로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사회 제도
    • 농민 안정책

각종 재해를 당한 농민에게는 조세를 덜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책에도 불구하고 농민의 생활이 자주 어려움을 당하자, 국가에서는 의창, 상평창 등을 설치하고 환곡제를 실시하여 이들을 구제하였다.

향촌 사회에서 자치적으로 실시된 사창 제도는 양반 지주들이 향촌의 농민 생활을 안정시켜 양반 중심의 향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 의료 시설

의료 시설로는 혜민국, 동⋅서 대비원, 제생원, 동⋅서 활인서 등이 있었다. 혜민국과 동⋅서 대비원은 수도권 안에 거주하는 서민 환자의 구제와 약재 판매를 담당하였고, 제생원은 지방민의 구호 및 진료를 담당하였다. 동⋅서 활인서는 유랑자의 수용과 구휼을 담당하였다.

 

    • 법률 제도

조선 시대에는 관습법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한 고려 시대와 달리, 경국대전과 대명률로 대표되는 법전에 의해 형벌과 민사에 관한 사항을 규율하였다. 이 중에서 형벌에 관한 사항은 대부분 대명률의 적용을 받았다.

범죄 중에서 가장 무겁게 취급된 것은 반역죄와 강상죄였다. 이 같은 범죄에는 범인은 물론이고 부모, 형제, 처자까지도 함께 처벌하는 연좌제가 시행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범죄가 발생한 고을의 호칭이 강등되고, 고을의 수령은 낮은 근무 성적을 받거나 파면되기도 하였다. 형벌은 태, 장, 도, 유, 사의 5종이 기본으로 시행되었다.

조선의 사법 기관은 행정 기관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중앙에는 관리의 잘못이나 중대한 사건을 재판하는 사헌부, 의금부, 형조와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한성부, 그리고 노비에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는 장례원이 있었다. 지방에서는 관찰사와 수령이 각각 관할 구역 내의 사법권을 가졌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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