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능검 기본 27번 해설 – 조선 정조

문제

27. (가) 왕의 재위 기간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①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백성

② 만적과 봉기를 모의하는 노비

③ 원산 총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

④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는 프랑스군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정조 시기 신해통공에 따른 금난전권 폐지, 장용영 설치 등이 이루어졌다.

 

①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백성

조선 정조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만적과 봉기를 모의하는 노비

고려 무신 정권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원산 총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

일제 강점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는 프랑스군

병인양요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최충헌 –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노동 운동
  • 배경

1920년대에는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에 따라 산업 노동자 수가 점차 늘어났다. 동시에 한국인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힘겨운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임금은 대부분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일본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한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민족 차별 등은 노동자의 계급 의식과 민족 의식을 불러일으켜 노동 운동을 벌이는 배경이 되었다.

 

  • 1920년대 노동 운동

1920년대에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였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은 지역별 직업별로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 단체에 참여하여 노동 조건과 민족 간 차별 대우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1923년 경성고무공장 여공들의 파업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1924년에는 조선 노농 총동맹이 만들어졌다

 

    • 조선 노동 총동맹

1927년 조선 노농 총동맹이 조선 농민 총동맹과 조선 노동 총동맹으로 분리되었고, 조선 노동 총동맹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각 지방의 노동 쟁의를 이끌면서 노동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 원산 총파업

1929년 원산 라이징 선 석유회사에서 원산 노동 연합회 주도로 4개월간의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파업은 전국적으로 지지와 성원을 받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노동자도 격려 전문을 보내와 국제적 연대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 1930년대 노동 운동

일제는 1930년대에 대륙 침략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군수 공업 시설을 확충하고, 지하 자원을 약탈하였으며, 노동력을 동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일제는 한국 노동자의 임금을 더욱 인하하고, 노동 시간을 연장하였으며, 각종 부담금을 강제로 징수하였다.

1930년대 노동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비합법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노동 운동은 반제국주의 항일 운동의 성격을 보였다.

1931년 평원고무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강주룡은 을밀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다.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1866년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프랑스 선교사들과 수많은 신자를 처형하였다(병인박해).

 

  • 병인양요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극동 함대의 로즈 제독을 보내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였다(1866년).

 

  • 전개

강화도 문수산성에서 한성근 부대가 전투를 벌였고,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부대가 항전하였다.

조선군의 저항으로 사상자가 생긴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물러났다.

 

  • 결과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도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의궤를 비롯한 각종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병인양요를 계기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과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를 강화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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