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능검 기본 9번 해설 – 발해

문제

9.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건국하였다.

② 안시성에서 당의 군대를 물리쳤다.

③ 최고 행정 기구로 집사부를 설치하였다.

④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발해 선왕 때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를 편찬했다.

 

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건국하였다.

698년, 대조영이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서 발해를 건국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안시성에서 당의 군대를 물리쳤다.

고구려 시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최고 행정 기구로 집사부를 설치하였다.

신라 진덕 여왕 시기 왕의 직속 기관인 집사부를 설치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후고구려의 궁예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발해 건국
대조영
  • 698년,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발해 건국
  • 국호를 ‘진(震)’이라 하고, 당나라에서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
  •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 또는 고려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 문화의 유사성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
  • 천통이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발해 선왕
  • 9세기 전반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
  • 남쪽으로는 신라와 국경을 접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
  •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 부름
  • 건흥이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조선 후기
국학 연구
실학의 발달과 함께 민족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우리의 역사, 지리, 국어 등을 연구하는 국학이 발달하였다.

 

  • 역사
    • 이익

이익은 실증적이며 비판적인 역사 서술을 제시하고,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민족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다.

 

    • 안정복

이익의 제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저술하여 이익의 역사 의식을 계승하였다.

동사강목

고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우리 역사의 독자적 정통론을 세워 이를 체계화하였다.

 

    • 이긍익

이긍익은 조선 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정리하여 연려실기술을 저술하였다.

 

    • 한치윤

한치윤은 500여 종의 중국 및 일본의 자료를 참고하여 해동역사를 편찬하여 민족사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였다.

 

    • 이종휘

이종휘는 동사에서 고구려 역사 연구를 하였다.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

 

    • 유득공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발해사 연구를 심화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신라의 통일은 불완전한 것이고, 북쪽에 발해가 있었으므로 이를 남북국이라 불러야 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

옛날에 고씨가 북쪽 지방에 자리잡아 고구려라 했고, 부여씨가 서쪽 지방에 머무르면서 백제라 했으며, 박씨, 석씨, 김씨가 동남 지방에 살면서 신라라 하였다. 이것이 바로 삼국이다.

마땅히 삼국에 대한 사서가 있어야 할 텐데, 고려가 이것을 편찬했으니 옳은 일이다.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한 후에 김씨가 남쪽을 차지하고, 대씨가 북쪽을 차지하고는 발해라 했으니, 이것을 남북국이라 한다. 거기에는 마땅하게 남북국의 사서가 있었을 텐데, 고려가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발해고>

 

  • 지리서

국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여 우수한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 한백겸

역사 지리서로 한백겸의 동국지리지가 나왔다.

 

    • 정약용

역사 지리서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등이 나왔다.

 

    • 이중환

인문 지리서로 이중환의 택리지가 편찬되었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 생활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점에서 주목된다.

택리지

각 지역의 자연 환경과 물산, 풍속, 인심 등을 서술하고, 어느 지역이 살기 좋은 곳인가를 논한 책

 

  • 지도

중국에서 서양식 지도가 전해짐에 따라 정밀하고 과학적인 지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 정상기

영조 시기 제작된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최초로 100리척을 사용하여 정확하고 과학적인 지도 제작에 공헌하였다.

 

    • 김정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산맥, 하천, 포구, 도로망의 표시가 정밀하고, 거리를 알 수 있도록 10리마다 눈금이 표시되었으며,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 국어
    • 신경준

신경준의 음운 연구서인 훈민정음운해가 나왔다.

 

    • 유희

유희의 음운 연구서인 언문지가 나왔다.

 

    • 이의봉

우리의 방언과 해외 언어를 정리한 이의봉의 고금석림이 편찬되었다.

 

  • 백과 사전

조선 후기에는 실학이 발달하고 문화 인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백과 사전류의 저서가 많이 편찬되었다.

 

    • 이수봉

이 방면의 효시가 된 책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다.

 

  • 이익 <성호사설>

성호사설에서 이익은 나라가 가난하게 된 원인은 노비 제도, 과거 제도, 양반 제도 등이 잘못된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고리대 활동과 농민의 게으름도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 이덕무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 서유구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 이규경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 동국문헌비고

영⋅정조 때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되었는데, 이 책은 우리 나라의 역대 문물을 정리한 한국학 백과 사전이다.

 

  • 기타

김정희는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다.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편찬하였다.

고구려와
수·당 전쟁
  • 612년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수나라)
  • 631년 천리장성 축조 시작(당나라 대비)
  • 642년 연개소문 정변, 영류왕 살해, 보장왕 즉위
  • 645년 안시성 전투(당나라)
신라
진덕 여왕
  • 왕의 직속 기관인 집사부 설치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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