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능검 기본 29번 해설 – 신미양요

문제

29. 밑줄 그은 ‘전투’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①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② 집현전이 설치되었다.

③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

④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71년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신미양요).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의 수비대가 격렬하게 항전하였으나 광성보는 함락되었다.

 

①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1866년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프랑스 선교사들과 수많은 신자를 처형하였다(병인박해).

1866년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극동 함대의 로즈 제독을 보내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였다(병인양요).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집현전이 설치되었다.

조선 세종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

고구려 연개소문, 고려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각각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④번이다.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 제너럴 셔먼호 사건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 신미양요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신미양요, 1871년).

 

    • 전개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의 함대는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였다.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의 수비대가 격렬하게 항전하였으나 광성보는 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협상에 응하지 않자 미군은 퇴각하였다.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1866년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프랑스 선교사들과 수많은 신자를 처형하였다(병인박해).

 

  • 병인양요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극동 함대의 로즈 제독을 보내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하였다(1866년).

 

  • 전개

강화도 문수산성에서 한성근 부대가 전투를 벌였고,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부대가 항전하였다.

조선군의 저항으로 사상자가 생긴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물러났다.

 

  • 결과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도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의궤를 비롯한 각종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병인양요를 계기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과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를 강화하였다.

척화비 건립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막았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척화비

조선 세종
  • 집현전 설치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 의정부 서사제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 쓰시마섬 정벌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 4군 6진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 계해약조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으로 허용해 주었다.

  •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 지도·지리지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 삼강행실도

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 과학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와 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 칠정산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 갑인자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 총편등록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 농사직설

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 의학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 부민고소금지법

하급 서리나 일반 백성들이 경외의 상급 관리들에 대해 고소를 금지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을 시행하였다.

고구려와
수·당 전쟁
  • 612년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수나라)
  • 631년 천리장성 축조 시작(당나라 대비)
  • 642년 연개소문 정변, 영류왕 살해, 보장왕 즉위
  • 645년 안시성 전투(당나라)
고려
거란의 침입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강감찬이 흥화진 전투에서 승리.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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