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의 여진 정벌

13번 문제

13. (가)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은 것은? [1점]

①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하였다.

② 박위를 시켜 근거지를 토벌하였다.

③ 양규가 곽주성을 급습하여 탈환하였다.

④ 송문주가 죽주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⑤ 동북 9성을 축조하고 경계를 알리는 비석을 건립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에 들어갈 내용은 여진이다.

 

①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하였다.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 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하였다.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박위를 시켜 근거지를 토벌하였다.

고려 말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양규가 곽주성을 급습하여 탈환하였다.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다.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을 갔다.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송문주가 죽주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1236년 몽골의 3차 침입 때 지금의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죽주성(죽주산성)에서 송문주가 몽골군을 크게 격퇴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동북 9성을 축조하고 경계를 알리는 비석을 건립하였다.

고려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했다.

1107년, 고려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고려
여진 정벌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

별무반 –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

1115년, 예종 때 강성해진 여진족은 금을 건국.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금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

고려
몽골의 침입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하였다.

 

  • 몽골의 1차 침입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 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 몽골의 2차 침입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 몽골의 3차 침입

1236년 몽골의 3차 침입 때 지금의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죽주성(죽주산성)에서 송문주가 몽골군을 크게 격퇴했다.

 

  • 몽골의 5차 침입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 피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 개경 환도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 삼별초의 항쟁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듦.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으로 구성

고려
거란의 침입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강감찬이 흥화진 전투에서 승리.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왜구의 침입 공민왕 때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을 받았다.

최영, 이성계 등이 나서서 왜구를 토벌하였고, 최무선은 화포를 사용하여 진포 대첩에서 왜구를 격퇴했다.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다.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의 무인 세력이 성장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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