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번 문제
31. 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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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삼국 간섭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한다.
②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목적을 살펴본다.
③ 황국 중앙 총상회가 설립된 배경을 파악한다.
④ 재정 고문 메가타가 주도한 정책을 찾아본다.
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조사한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04년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1905년 메가타의 주도 하에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조선의 화폐였던 백동화와 엽전을 일본 제일은행에서 발행하는 일본 화폐인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하게 했다.
① 삼국 간섭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한다.
1895년 청일 전쟁에서 패한 청은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청은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의 랴오둥반도 점유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다고 일본을 압박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청에게 할양 받은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주는 대신 보상금을 받았다.
이를 삼국 간섭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목적을 살펴본다.
1862년 임술 농민 봉기 이후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황국 중앙 총상회가 설립된 배경을 파악한다.
개항 이후, 서울을 비롯한 조선 각지에서 청과 일본 상인의 상권 침탈 경쟁이 치열해졌다.
1898년 서울 상인들은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여, 외국인의 불법적인 내륙 상업 활동을 엄단할 것을 요구하며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재정 고문 메가타가 주도한 정책을 찾아본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조사한다.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882년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러일 전쟁 중 일제는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고 대한 제국에 메가타를 재정 고문으로 파견하였다.
메가타의 주도 하에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조선의 화폐였던 백동화와 엽전을 일본 제일은행에서 발행하는 일본 화폐인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하게 했다. 백동화의 품질에 따라 갑, 을, 병 3등급으로 구분하여 교환해 줬는데, ‘병’ 등급에 해당하는 백동화는 교환이 거부되어 조선 상인들이 타격을 입었다.
화폐 정리 사업 과정에서, 일본의 제일은행이 중앙 은행 기능을 맡도록 하여 대한제국의 금융 정책을 지배하게 되었다.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대한 제국의 화폐 정리와 시설 개선의 명목으로 차관을 강요하였다. 일본의 차관 제공 정책은 대한 제국을 재정적으로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려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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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 전쟁 |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당시 농촌 사회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외세의 침투에 대한 반발 등으로 인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청일 상인에 의해 영국산 면직물이 싼값에 들어오면서 면포를 짜서 팔던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일본으로의 곡물 수출이 늘어 곡물 가격이 오르자 일본에 대한 농민들의 반감이 커졌다. 개화 정책으로 늘어난 정부의 재정 지출은 농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졌다 정치⋅사회적 의식이 급성장한 농촌 지식인과 농민의 사회 변혁 욕구도 높아졌다.
이 무렵, 동학의 교세는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다. 동학의 인간 평등 사상과 사회 개혁 사상은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갈망하는 농민의 요구에 부합되었고, 동학의 포접제 조직은 대규모 농민 세력의 규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동학의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자 지방관들은 동학을 탄압하였고 농민들에게 동학 교도의 누명을 씌워 탄압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동학교도들은 1892년부터 충청도 공주, 전라도 삼례, 한성 등에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동학교도들은 전라도 삼례에서 집회를 가지고, 동학에 대한 박해를 중지할 것과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줄 것을 요구하였다.
동학의 지도급 인사 40여 명이 경복궁 앞에서 상소를 하였다.
충청도 보은에서는 동학 교도와 농민 2만여 명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 탐관 오리의 숙청, 일본과 서양 세력의 축출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다가, 마침내 동학 중심의 종교 운동을 농민 중심의 정치 운동으로 전환시켜 갔다.
농촌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횡포와 착취를 저지르며 농민들을 수탈했다. 농민들은 전봉준을 지도자로 하여 봉기하였다. 전봉준 등은 사발통문을 돌려 세력을 모았다. 농민들은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사람들을 풀어 주고, 창고의 곡식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를 허물었다. 이에 정부가 새로운 군수를 임명하자 농민들은 군수의 다짐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하였다.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봉기에 참여한 농민들을 동학교도라는 죄목으로 잡아들이고 탄압하자 농민들의 분노가 다시 거세졌다. 전봉준은 손화중과 함께 전라도 각지에서 농민군을 모아 무장에서 대규모로 봉기하였다.
이들은 고부를 점령하고 나서 백산에서 농민군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폭정을 없애고 백성을 구한다’라는 뜻의 제폭구민(除暴救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히 한다’라는 뜻의 보국안민(輔國安民) 등의 구호를 담은 격문을 전국에 보내 백성의 동참을 호소하였고, 4대 강령을 발표했다.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이 틈을 이용하여 일본은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정부와 화약을 맺었다. 이를 전주 화약이라고 한다.
농민군은 정부에 폐정 개혁 12개조를 건의하고,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개혁을 실천해 나갔다.
청이 조선에 파병하게 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내어 마침내 청⋅일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조선 정부는 청⋅일 양국에 철병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 간섭을 하였다(군국기무처 설치).
일본군이 청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내정 간섭하자, 농민군은 다시 봉기하여 외세를 몰아 내기 위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남접 농민군과 북접 농민군은 논산에 집결하였다가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으나, 근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패하여 큰 희생을 치렀다. 결국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전쟁에서 패한 청은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1895년). 청은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의 랴오둥반도 점유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다고 일본을 압박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청에게 할양 받은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주는 대신 보상금을 받았다.
동학 농민 운동은 농민층이 봉건적 지배 체제에 반대하여 노비 문서의 소각, 토지의 평균 분작 등 개혁 정치를 요구하고, 외세의 침략을 자주적으로 물리치려 했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반봉건적, 반침략적 민족 운동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갑오개혁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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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술 농민 봉기 | 홍경래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은 의외로 커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아 일어났다.
철종 때에 진주에서 일어난 임술 농민 봉기(1862년)는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삼정 문란의 원인을 운영상의 문제로만 파악하여 농민 봉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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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권 수호 운동 |
개항 이후, 서울을 비롯한 조선 각지에서 청과 일본 상인의 상권 침탈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에 반발하여 1890년, 수천 명의 서울 상인들은 철시(영업을 하지 않고 문을 닫음)하고 외국 상점들의 서울 퇴거를 요구하였다. 그 뒤에도 철시한 서울 상인들과 시민 수천 명이 1주일 동안 격렬하게 상권 수호 운동을 벌였다.
1898년 서울 상인들은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여, 외국인의 불법적인 내륙 상업 활동을 엄단할 것을 요구하며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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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과의 조약 체결 |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1882년).
서양과 최초로 맺은 이 조약은 일본과 체결한 조약과는 달리 거중 조정, 관세 부과 조항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고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는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최혜국 대우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 상인들도 동일하게 보장받았다.
이 조약으로 인해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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