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 문제
27.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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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②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③ 변발과 호복이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④ 망이·망소이의 난 등 하층민의 봉기가 발생하였다.
⑤ 질병에 대한 처방 등을 소개한 향약구급방이 편찬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후기 경제의 변동과 신분제의 동요 속에서 사족 중심의 향촌 질서도 변화하였다.
향촌 사회 내부에서 양반이 지녔던 권위가 점차 약해졌고, 새롭게 등장한 부농층(신향)과 기존 사족(구향)이 향촌 사회의 지배권을 두고 향전이 발생했다.
① 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고려시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후기 영⋅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하자,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정조 때에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제각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변발과 호복이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고려시대 원 간섭기의 사회 모습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망이·망소이의 난 등 하층민의 봉기가 발생하였다.
고려 무신 정권기인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질병에 대한 처방 등을 소개한 향약구급방이 편찬되었다.
고려 중기의 의학은 당⋅송 의학의 수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의학으로 발달함으로써 향약방이라는 고려의 독자적 처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향약구급방을 비롯한 많은 의서가 편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 조선 후기 양반의 향촌 지배 약화 |
경제의 변동과 신분제의 동요 속에서 사족 중심의 향촌 질서도 변화하였다. 평민과 천민 중에 재산을 모아 부농층으로 등장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양반 중에는 토지를 잃고 몰락하여 전호가 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임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향촌 사회 내부에서 양반이 지녔던 권위가 점차 약해졌고, 새롭게 등장한 부농층(신향)과 기존 사족(구향)이 향촌 사회의 지배권을 두고 향전이 발생했다.
양반의 명단인 청금록과 향안은 신문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 서류인 동시에 향약 등 향촌 자치 기구의 주도권 장악을 위하여 중요시되었다.
양반은 군현을 단위로 농민을 지배하기 어렵게 되자, 촌락 단위의 동약을 실시하거나 족적 결합을 강화함으로써 자기들의 지위를 지켜 나가고자 하였다.
전국에 많은 동족 마을이 만들어지고, 문중을 중심으로 서원, 사우가 많이 세워졌다.
경제력을 갖춘 부농층은 수령을 중심으로 한 관권과 결탁하여 향안에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향회를 장악하여 향촌 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려 하였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부농층의 성장 욕구는 재정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정부의 이해와 일치하여 정부도 이들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정부는 납속이나 향직의 매매를 통하여 이들 부농층 성장의 합법적인 길을 열어 주기도 하였다.
부농층은 종래의 재지 사족이 담당하던 정부의 부세 제도 운영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향임직에 진출하거나 기존 향촌 세력과 타협하면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하여 갔다.
종래의 재지 사족의 힘이 약화되고, 부농층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향촌 세력의 힘이 충분히 강해지지 못한 가운데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관권이 강화되고 아울러 관권을 맡아 보고 있던 향리의 역할이 커졌다. 종래에 재지 사족인 양반의 이익을 대변하여 왔던 향회는 주로 수령이 세금을 부과할 때에 의견을 물어 보는 자문 기구로 구실이 변하였다. 곧, 수령 중심의 국가 권력이 향촌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여 재지 사족이 지배하고 있던 영역을 장악해 나갔다.
관권의 강화는 세도 정치 시기에 정치 기강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수령과 향리의 자의적인 농민 수탈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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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중간 계층의 신분 상승 운동 |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 변동이 심화되는 가운데 서얼과 중인 등 중간 계층의 역할도 커졌다.
서얼에 대한 차별은 임진왜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전란으로 재정적 타격을 받은 정부가 납속책을 실시하고 공명첩을 발급하자, 서얼은 이를 이용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영⋅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하자,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정조 때에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제각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술직 중인들은 주로 기술직에 종사하며 축적한 재산과 탄탄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대규모 소청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중인 중에서도 역관들은 청과의 외교 업무에 종사하면서 서학을 비롯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여, 성리학적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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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교육 기관 |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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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간섭기 사회 변화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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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무신정권기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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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천문학과 의학 |
천문과 역법을 맡은 관청으로서 사천대(서운관)가 설치되었고, 이 곳의 관리는 첨성대에서 관측 업무를 수행하였다.
역법 연구에서도 착실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고려 초기에는 신라 때부터 쓰기 시작하였던 당의 선명력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의 충선왕 때에는 원의 수시력을 채용하고 그 이론과 계산법을 충분히 소화하였다.
의료 업무를 맡은 태의감에서 의학 교육을 실시하고, 의원을 뽑는 의과를 시행하여 고려 의학이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고려 중기의 의학은 당⋅송 의학의 수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의학으로 발달함으로써 향약방이라는 고려의 독자적 처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향약구급방을 비롯한 많은 의서가 편찬되었다. 13세기에 편찬된 향약구급방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의학 서적으로, 각종 질병에 대한 처방과 국산 약재 180여 종이 소개되어 있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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