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번 문제
25. 다음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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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활구라고 불리는 은병이 주조되었다.
②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③ 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④ 보부상이 장시를 돌아다니며 상품을 판매하였다.
⑤ 설점수세제의 시행으로 민간의 광산 개발이 허용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조선 후기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조선 후기 숙종 시기 상평통보가 발행되었다.
① 활구라고 불리는 은병이 주조되었다.
고려 숙종 때 활구라고 불리는 은병이 주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18세기 이후에는 사상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사상의 활동은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평양, 의주, 동래 등 지방 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대표적인 사상인 송상과 만상은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보부상이 장시를 돌아다니며 상품을 판매하였다.
조선 후기 농촌의 장시를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시킨 상인은 보부상이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한 행상으로서, 장날의 차이를 이용하여 일정 지역 안이나 전국적인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설점수세제의 시행으로 민간의 광산 개발이 허용되었다.
조선 후기 설점수세제의 시행으로 민간의 광산 개발이 허용되었다.
설점수세제 – 조선 후기 정부 주도로 설점(設店)하여 광물 채굴을 허가하고 세금을 거둔 제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①번이다.
| 조선 후기 화폐 유통 |
조선 후기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교환의 매개로서 금속 화폐, 즉 동전이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세금과 소작료도 동전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누구나 동전인 상평통보만 가지면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동전은 교환 수단일 뿐 아니라 재산 축적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동전의 발행량이 상당히 늘어났는데도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시중에서 동전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지주나 대상인들이 화폐를 고리대나 재산 축적에 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환, 어음 등의 신용 화폐가 점차 보급되어 갔다. 이는 이 시기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과 상업 자본의 성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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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경제 활동 |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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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수취 체제의 개편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농촌 사회는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수많은 농민이 전란 중에 사망하거나 피난을 가고 경작지는 황폐화되었다. 게다가 굶주림과 질병까지 널리 퍼져서 농촌 생활의 어려움은 극에 달하였지만, 농민의 조세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국가는 수취 체제를 개편하여 농촌 사회를 안정시키고 재정 기반을 확대하려 하였다. 그것은 전세 제도, 공납 제도, 군역 제도의 개편으로 나타났다.
양 난 이후 조선 정부의 가장 큰 어려움은 농경지의 황폐와 전세 제도의 문란이었다. 이에 정부는 개간을 권장하면서 서둘러 경작지를 확충하고자 하였다. 또, 전세를 확보하기 위하여 토지 조사 사업도 서둘렀다. 이것은 토지 대장인 양안에서 빠진 토지를 찾아 내어 전세의 수입원을 증대시키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으로는 농민의 삶을 향상시킬 수 없었다. 농민은 자신들의 고통을 줄여 주는 정책을 기대하였다.
인조 때 연분9등법을 따르지 않고 풍년이건 흉년이건 관계 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6두로 고정시켰다. 이를 영정법이라 한다(1635년).
당시 농민에게 가장 큰 부담을 주던 것은 공납이었다. 특히, 방납의 폐해가 나타나면서 농민의 부담은 더욱 커져 갔다. 부담을 견디지 못한 농민은 농토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정부의 재정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가자, 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완하고 농민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론이 제기되어 광해군 때 대동법이 실시되었다. 대동법은 집집마다 부과하여 토산물을 징수하던 공물 납부 방식을 토지의 결수에 따라 쌀, 삼베나 무명, 동전 등으로 납부하게 하는 제도였다. 농민은 대체로 토지 1결당 미곡 12두만 납부하면 되었다. 이 때문에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에게 과중하게 부과되던 공물 부담은 없어지거나 어느 정도 경감되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대동법이 실시된 뒤에도 왕실에 상납하는 진상이나 별공을 여전히 부담하였고, 지방 관청에서도 필요에 따라 수시로 특산물을 징수하였다. 선혜청을 설치하여 대동세의 출납을 관리하게 했다.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이라는 어용 상인이 나타났다. 이들은 관청에서 공가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납부하였다. 공인이 시장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하였으므로 상품 수요가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물품의 수요와 공급이 증가하면서 상품 화폐 경제가 한층 발전하였다.
양 난 이후 5군영의 성립으로 모병제가 제도화되자, 군영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포를 내는 것으로 군역을 대신하는 수포군이 점차 증가하였다. 그러나 5군영은 물론, 지방의 감영이나 병영까지도 독자적으로 군포를 징수하면서 장정 한 명에게 이중 삼중으로 군포를 부담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바치는 군포의 양도 소속에 따라 2필 또는 3필 등으로 달랐다.
임진왜란 이후 납속이나 공명첩으로 양반이 되어 면역하는 자가 늘어나면서 군역의 재원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국의 장정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여, 재정 상태가 어려워지자 군포의 부과량을 점차 늘릴 수밖에 없었다. 군역의 부담이 과중해지자, 농민은 도망가거나 노비나 양반으로 신분을 바꾸어 군역을 피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이에 군역의 폐단을 시정하려는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마침내 영조 때 균역법이 시행되었다(1750년). 이로부터 농민은 1년에 군포 1필만 부담하면 되었다.
균역법의 시행으로 감소된 재정은 지주에게 결작이라고 하여 토지 1결당 미곡 2두를 부담시켰다.
일부 상류층에게 선무군관이라는 칭호를 주고 군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으며, 어장세, 선박세 등 잡세 수입으로 보충하게 하였다.
토지에 부과되는 결작의 부담이 소작 농민에게 돌아가고, 군적 문란이 심해지면서 농민의 부담은 다시 가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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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사상의 대두 |
조선 후기에는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수공업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상품의 유통도 활성화되었다. 부세 및 소작료의 금납화, 인구의 자연 증가와 인구의 도시 유입도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을 더욱 촉진하였다.
1791년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을 허락하였다. 이를 신해통공이라고 한다. 이로써 상인들은 보다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이라는 어용 상인이 나타났다. 이들은 관청에서 공가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납부하였다. 공인이 시장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하였으므로 상품 수요가 증가하였다.
처음에는 공인이 상업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사상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사상의 활동은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평양, 의주, 동래 등 지방 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그들은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였다.
개성의 송상은 전국에 지점을 설치하여 활동 기반을 강화하였는데, 주로 인삼을 재배, 판매하고 대외 무역에도 깊이 관여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경강상인은 운송업에 종사하면서 거상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주로 서남 연해안을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선박의 건조 등 생산 분야에까지 진출하여 활동 분야를 넓히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동래부(東萊府, 현재의 부산)에서 일본과 무역을 하였다.
의주에서 활동하던 만상은 대중국 무역을 주도하면서 부를 많이 축적하였다.
일부 공인과 사상은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로 성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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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 |
조선 후기 사상의 성장은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발달한 장시를 토대로 하였다.15세기 말 남부 지방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장시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1000여 개소가 개설되었다.
장시는 지방민의 교역 장소로, 인근의 농민, 수공업자, 상인이 일정한 날짜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물건을 교환하였는데, 보통 5일마다 열렸다. 일부 장시는 상설 시장이 되기도 하였지만, 인근의 장시와 연계하여 하나의 지역적 시장권을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18세기 말의 장시 중에서 광주 송파장, 은진 강경장, 덕원 원산장, 창원 마산포장 등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연결하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다.
농촌의 장시를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시킨 상인은 보부상이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한 행상으로서, 장날의 차이를 이용하여 일정 지역 안이나 전국적인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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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민영 광산의 증가 |
광산은 본래 정부가 독점하여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였다.
정부는 17세기 중엽부터 설점수세제를 시행하여 민간인에게 광산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에 의한 광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광산의 개발은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몰래 채굴하는 잠채도 성행하였다.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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