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번 문제
39. 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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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보안회의 활동 내용을 분석한다.
② 조선 형평사의 창립 목적을 파악한다.
③ 군국기무처가 설치된 계기를 찾아본다.
④ 전주 화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⑤ 대한 자강회가 해산된 배경을 조사한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갑오개혁 때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정도 평등한 지위를 얻었으나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23년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① 보안회의 활동 내용을 분석한다.
1904년 보안회는 토지 약탈을 목적으로 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 운동을 벌여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조선 형평사의 창립 목적을 파악한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군국기무처가 설치된 계기를 찾아본다.
1894년 동학 농민군에 의한 제1차 농민 봉기로 청과 일본 모두 조선에 파병하게 되었다.
일본은 경복궁 점령을 통해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하게 되었다.
1894년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것이 제1차 갑오개혁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전주 화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의 제1차 농민 봉기 후,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이 틈을 이용하여 일본은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정부와 화약을 맺었다. 이를 전주 화약(1894년 6월)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대한 자강회가 해산된 배경을 조사한다.
1906년 대한 자강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15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나,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의 퇴위를 강요하자, 격렬한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체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갑오개혁 때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정도 평등한 지위를 얻었으나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총독부는 새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 출신을 호적에 ‘도한’으로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차별하였다. 학교 입학 통지서에도 백정 신분을 밝힘으로써 입학이 거부되거나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많았다.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년),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더 나아가 조선 형평사는 다른 분야의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면서 파업, 소작 쟁의 등에 참가하는 등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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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 계몽 운동 |
보안회는 토지 약탈을 목적으로 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 운동을 벌여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독립 협회에 영향을 받은 헌정 연구회는 국민의 정치 의식 고취와 입헌 정체의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대한 자강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15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나,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의 퇴위를 강요하자, 격렬한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체되었다.
대한 협회는 대한 자강회를 계승하여 교육의 보급, 산업의 개발, 민권의 신장, 행정의 개선 등을 강령으로 내걸고,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한국 지배권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대한 협회의 국권 회복에 대한 의지가 크게 약화되었다.
신민회는 1907년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를 망라하여 조직된 비밀 결사였다. 안창호, 양기탁 등을 지도부로 하였다. 신민회는 국권의 회복과 공화 정체의 국민 국가 건설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표면적으로는 문화적,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독립군 기지의 건설에 의한 군사적 실력 양성을 기도하였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신민회는 평양과 서울에 설립된 태극 서관에서 계몽 서적을 출판하였다. 또한 평양에 자기 회사를 세워 민족 산업의 육성에도 힘썼다.
만주에 독립군 기지(삼원보)를 건설하고, 신흥 무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기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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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 전쟁 |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당시 농촌 사회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외세의 침투에 대한 반발 등으로 인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청일 상인에 의해 영국산 면직물이 싼값에 들어오면서 면포를 짜서 팔던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일본으로의 곡물 수출이 늘어 곡물 가격이 오르자 일본에 대한 농민들의 반감이 커졌다. 개화 정책으로 늘어난 정부의 재정 지출은 농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졌다 정치⋅사회적 의식이 급성장한 농촌 지식인과 농민의 사회 변혁 욕구도 높아졌다.
이 무렵, 동학의 교세는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다. 동학의 인간 평등 사상과 사회 개혁 사상은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갈망하는 농민의 요구에 부합되었고, 동학의 포접제 조직은 대규모 농민 세력의 규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동학의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자 지방관들은 동학을 탄압하였고 농민들에게 동학 교도의 누명을 씌워 탄압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동학교도들은 1892년부터 충청도 공주, 전라도 삼례, 한성 등에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동학교도들은 전라도 삼례에서 집회를 가지고, 동학에 대한 박해를 중지할 것과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줄 것을 요구하였다.
동학의 지도급 인사 40여 명이 경복궁 앞에서 상소를 하였다.
충청도 보은에서는 동학 교도와 농민 2만여 명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 탐관 오리의 숙청, 일본과 서양 세력의 축출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다가, 마침내 동학 중심의 종교 운동을 농민 중심의 정치 운동으로 전환시켜 갔다.
농촌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횡포와 착취를 저지르며 농민들을 수탈했다. 농민들은 전봉준을 지도자로 하여 봉기하였다. 전봉준 등은 사발통문을 돌려 세력을 모았다. 농민들은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사람들을 풀어 주고, 창고의 곡식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를 허물었다. 이에 정부가 새로운 군수를 임명하자 농민들은 군수의 다짐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하였다.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봉기에 참여한 농민들을 동학교도라는 죄목으로 잡아들이고 탄압하자 농민들의 분노가 다시 거세졌다. 전봉준은 손화중과 함께 전라도 각지에서 농민군을 모아 무장에서 대규모로 봉기하였다.
이들은 고부를 점령하고 나서 백산에서 농민군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폭정을 없애고 백성을 구한다’라는 뜻의 제폭구민(除暴救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히 한다’라는 뜻의 보국안민(輔國安民) 등의 구호를 담은 격문을 전국에 보내 백성의 동참을 호소하였고, 4대 강령을 발표했다.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이 틈을 이용하여 일본은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정부와 화약을 맺었다. 이를 전주 화약이라고 한다.
농민군은 정부에 폐정 개혁 12개조를 건의하고,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개혁을 실천해 나갔다.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청이 조선에 파병하게 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조선 정부는 청⋅일 양국에 철병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 간섭을 하였다(군국기무처 설치).
경복궁 점령 이틀 뒤, 마침내 풍도 해전을 시작으로 청⋅일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일본군이 청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내정 간섭하자, 농민군은 다시 봉기하여 외세를 몰아 내기 위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남접 농민군과 북접 농민군은 논산에 집결하였다가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으나, 근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패하여 큰 희생을 치렀다. 결국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전쟁에서 패한 청은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1895년). 청은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의 랴오둥반도 점유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다고 일본을 압박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청에게 할양 받은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주는 대신 보상금을 받았다.
동학 농민 운동은 농민층이 봉건적 지배 체제에 반대하여 노비 문서의 소각, 토지의 평균 분작 등 개혁 정치를 요구하고, 외세의 침략을 자주적으로 물리치려 했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반봉건적, 반침략적 민족 운동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갑오개혁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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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갑오개혁 |
제1차 동학 농민 봉기 후,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함께 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내정 개혁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일본군이 먼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년). 그리고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했다.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제1차 갑오개혁, 1894년 7월).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라 조선에 내정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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