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사회

15번 문제

15. 밑줄 그은 ‘이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① 주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

② 구황촬요를 읽고 있는 지방관

③ 시장을 감독하는 동시전의 관리

④ 제위보에서 곡식을 지급받는 농민

⑤ 세책가에서 춘향전을 빌리는 부녀자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고려의 지방 행정 조직에 대한 내용이다.

 

① 주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구황촬요를 읽고 있는 지방관

조선 명종 때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구황촬요를 간행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시장을 감독하는 동시전의 관리

신라 지증왕 때 시장 중 하나인 동시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전을 설치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제위보에서 곡식을 지급받는 농민

고려시대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세책가에서 춘향전을 빌리는 부녀자

조선 후기 홍길동전, 춘향전과 같은 한글 소설이 보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고려
지방 행정 조직
  • 고려 성종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지방관을 파견

 

  • 고려 현종

전국을 5도와 양계(동계, 양계), 경기로 크게 나누는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

 

  • 5도

상설 행정 기관이 없는 일반 행정 단위로서, 안찰사가 파견되어 도내의 지방을 순찰. 도 아래, 주와 군⋅현이 설치되고 지방관이 파견

 

  • 양계

북방의 국경 지대에는 동계⋅북계의 양계를 설치하여 병마사를 파견. 국방상의 요충지에는 진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군사적인 특수 지역이었다.

 

  • 3경

초기의 3경으로 개경(개성), 동경(경주), 서경(평양)을 두었고, 후기에는 개경(개성), 남경(양주목, 서울), 서경(평양)을 둠

 

  • 주현⋅속현

하나의 주현에는 여러 개의 속현과 향, 부곡, 소 등이 소속.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 더 많음.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은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의 행정 지배를 받음

 

  • 향⋅부곡⋅소

특수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는 주현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음. 향⋅부곡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고, 소의 주민은 수공업에 종사

발해 통치 체제
  • 중앙 정치 조직 – 3성 6부,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 좌·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
  • 최고 행정 기관인 정당성의 장관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
  • 중앙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 설치
  •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
  •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둠
  • 서적 관리, 주요 문서 작성 등을 위해 문적원을 설치
  • 관리의 비리 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중정대 설치
조선 명종
  • 을사사화

중종이 훈구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시 사림을 등용하기도 하였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끼리의 권력다툼에 윤임이 제거당하고, 사림 세력 역시 정계에서 밀려났다(1545년).

 

    • 정미사화

1547년 조선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 을묘왜변

15세기에 비교적 안정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16세기에 이르러 대립이 격화되었다.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이 일어났다.

이에, 조선은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정세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 을묘왜변

3포를 개항한 이후 왜인들은 약조를 지키지 않고 자주 소란을 피웠다. 특히, 1555년(명종 10)에는 왜인이 70여 척의 배를 몰고 전라남도 연안 지방을 습격해 왔다. 이후 일본과의 교류는 일시 단절되었다.

 

  • 직전법 폐지

1556년 명종 때 직전법이 폐지되어 수조권 지급 제도가 없어졌다.

 

  • 구황촬요

조선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신라
지증왕
  • 국호를 신라로 바꿈
  • 왕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침
  • 512년, 이사부에 명하여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킴
  • 소를 경작에 이용하는 우경을 실시
  • 시장 중 하나인 동시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전을 설치
  • 순장 폐지
고려
백성의 생활 모습
  • 향도

농민은 일상 의례와 공동 노동 등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공동체 조직의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신앙 조직이었던 향도였다.

향도(香徒)

매향 활동을 하는 무리이다. 매향은 불교 신앙의 하나로, 미륵을 만나 구원받고자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는 활동이다.

  • 의창

평시에 곡물을 비치하였다가 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는 의창이 있었다. 이는 고구려의 진대법과 유사한 것이었다.

 

  • 상평창

개경과 서경 및 각 12목에는 상평창을 두었다.

풍년에는 곡물을 사들이고 흉년에는 곡물을 풀어 물가의 안정을 꾀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 동⋅서 대비원

가난한 백성이 의료 혜택을 받도록 개경에 동⋅서 대비원을 설치하여 환자 진료 및 빈민 구휼을 담당하게 하였다.

 

  • 혜민국

혜민국을 두어 의약을 전담하게 하였다.

 

  • 구제도감·구급도감

각종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구제도감이나 구급도감을 임시 기관으로 설치하여 백성의 구제에 힘썼다.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하였다.

 

  • 혼인과 여성의 지위

고려 시대에는 여자는 18세 전후, 남자는 20세 전후에 혼인을 하였다.

고려 초에 왕실에서는 친족 간의 혼인이 성행하였다. 중기 이후 여러 번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인 형태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 여성의 지위

부모의 유산은 자녀에게 골고루 분배되었으며, 태어난 차례대로 호적에 기재하여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없을 때에는 양자를 들이지 않고 딸이 제사를 지냈으며, 상복 제도에서도 친가와 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사위가 처가의 호적에 입적하여 처가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사위와 외손자에게까지 음서의 혜택이 있었다.

공을 세운 사람의 부모는 물론, 장인과 장모도 함께 상을 받았다.

여성의 재가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그 소생 자식의 사회적 진출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발달
  • 한글 소설의 보급

허균의 홍길동전, 춘향전 등. 한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등장했다.

세책가에서 도서를 대여했다.

  • 판소리

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다. 신재효는 19세기 후반에 이런 판소리 사설을 창작하고 정리하였다.

  • 탈놀이

탈놀이와 산대놀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이런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 사설 시조

이 시기의 시조에는 서민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경향이 나타났다.

  • 시사(詩社) 조직

역관 등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호인들이 모여 시사를 조직하였다.

  • 정약용

정약용은 삼정의 문란을 폭로하는 한시를 남겼다.

  • 박지원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을 써서 양반 사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실용적 태도를 강조하였다.

  • 회화

회화에서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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