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강화도 조약

28번 문제

28. (가)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천주교 포교 허용의 근거가 되었다.

② 일본 측의 해안 측량권을 인정하였다.

③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조항을 담고 있다.

④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명시하였다.

⑤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1876년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

 

① 천주교 포교 허용의 근거가 되었다.

1886년 조불(프랑스)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 조약으로 인해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일본 측의 해안 측량권을 인정하였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조항을 담고 있다.

1883년에 체결된 조일 통상 장정에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조항을 담고 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명시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고 일본은 조선 내의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했다.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는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운요호 사건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운요호

 

  •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1876년).

당시 회담 모습

 

  • 성격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 내용

강화도 조약은 첫 번째 조항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 조일 수호 조규 부록(1876년)

이어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서는 거류지 설정과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 조일 무역 규칙(1876년)

조일 무역 규칙에서는 양곡의 수출입 허용, 정부 소속 일본 선박의 항세 면제 등을 규정하였고 이후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허용하였다.

 

  • 조일 통상 장정(1883년)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최혜국(最惠國) 대우

통상, 항해 조약 등에서 한 나라가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것

외국과의
조약 체결
  •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년)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 청의 알선과 조약 체결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1882년).

    • 내용

서양과 최초로 맺은 이 조약은 일본과 체결한 조약과는 달리 거중 조정, 관세 부과 조항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고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최혜국(最惠國) 대우

통상, 항해 조약 등에서 한 나라가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것

거중 조정

거중조정은 조선이 타 국가와 분쟁을 겪거나 침략을 받았을 때 미국이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뜻한다.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는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최혜국 대우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 상인들도 동일하게 보장받았다.

 

  • 조영 수호 통상 조약(1883년)

 

  • 조불(프랑스) 수호 통상 조약(1886년)

이 조약으로 인해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임오군란
  • 배경

구식 군대는 군제 개혁 후에 설립된 신식 군대(별기군)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 임오군란

13개월 만에 급료로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이에 분노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1882년).

이들은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였다. 한성 주변의 도시 하층민까지 합세하면서 군란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군란 세력은 경복궁까지 쳐들어가 민겸호 등 민씨 일파를 처단하고 민씨 일파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왕비를 찾았으나 왕비는 이미 피신한 상황이었다.

  • 흥선 대원군 재집권

고종이 흥선 대원군에게 군란의 수습을 맡기면서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개화 정책은 중단되었다.

 

  • 청의 개입

민씨 세력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한 청이 군란을 진압한 후, 흥선 대원군을 군란의 책임자로 지목하여 강제로 데려갔다

 

  • 민씨 세력 재집권

민씨 세력은 다시 권력을 잡았다.

다시 집권하게 된 민씨 일파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친청 정책으로 기울어졌다.

 

  • 제물포 조약

일본은 조선 내의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했으며,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다(1882년).

 

  • 청의 내정 간섭

청은 이후 조선의 내정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였다.

곧, 위안 스카이 등이 지휘하는 군대를 상주시켜 조선 군대를 훈련시키고, 마젠창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과 외교 문제에 깊이 간여하였다.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또, 조선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체결로 청나라 상인의 통상 특권을 허용하게 되고, 경제적 침략을 받게 되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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