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후백제 견훤

10번 문제

10.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②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③ 폐정 개혁을 목표로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④ 광평성을 비롯한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① 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백제 무왕이 금마저(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폐정 개혁을 목표로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고려 충목왕 때 폐정 개혁을 목표로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광평성을 비롯한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904년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904년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무태, 성책, 수덕만세, 정개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백제
무왕
  • 금마저에 미륵사를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
충목왕
  • 폐정 개혁을 목표로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기구로 흑창(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을 설치하였다.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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