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조선 성종

21번 문제

21.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독창적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② 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를 간행하였다.

③ 국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④ 기근에 대비하기 위한 구황촬요를 배포하였다.

⑤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를 건립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성종 때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등이 간행되었다.

 

① 독창적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조선 세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를 간행하였다.

조선 정조 때 무예도보통지가 간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국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조선 성종 때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기근에 대비하기 위한 구황촬요를 배포하였다.

조선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를 건립하였다.

조선 영조 때 탕평비가 건립되었따.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조선 성종
  • 경국대전 편찬
  • 관수관급제 실시 – 직전법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지방 관청에서 그 해의 생산량을 조사하여 거두고,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바뀜
  • 홍문관 설치 – 집현전 계승
  •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간행
  • 금양잡록 – 금양(시흥)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방의 농사법을 정리하여 금양잡록을 편찬
  • 팔도지리지 – 양성지가 지리지인 팔도지리지를 편찬
  • 동문선 – 서거정, 노사신 등이 우리나라의 역대 시문(詩文)을 모아 편찬
훈민정음 창제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으며, 자기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자를 만드는 원리가 매우 과학적인 뛰어난 문자이다.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등이 훈민정음 해례본 편찬에 참여하였다.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 도서 편찬

조선 정부는 한글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왕실 조상의 덕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 부처님의 덕을 기리는 월인천강지곡 등을 지어 한글로 간행하였다.

월인천강지곡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왕비인 소헌왕후가 죽자 세종은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에게 부처의 일대기와 설법을 담은 석보상절을 편찬하도록 했다. 석보상절을 한글로 옮긴 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또, 불경, 농서, 윤리서, 병서 등을 한글로 번역하거나 편찬하였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한양과 수원에 설치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조선 명종
  • 을사사화

조선 인종이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였다.

이후 인종의 외척인 대윤(윤임)과 명종의 외척인 소윤(윤원형)의 권력 다툼이 발생했고, 결국 윤임이 제거당하는 을사사화가 발생했다(1545년).

 

    • 정미사화

1547년 조선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 을묘왜변

15세기에 비교적 안정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16세기에 이르러 대립이 격화되었다.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이 일어났다.

이에, 조선은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정세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을묘왜변

3포를 개항한 이후 왜인들은 약조를 지키지 않고 자주 소란을 피웠다. 특히, 1555년(명종 10)에는 왜인이 70여 척의 배를 몰고 전라남도 연안 지방을 습격해 왔다. 이후 일본과의 교류는 일시 단절되었다.

 

  • 직전법 폐지

1556년 명종 때 직전법이 폐지되어 수조권 지급 제도가 없어졌다.

 

  • 구황촬요

조선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조선 후기
영조의 탕평 정치
  • 1728년 이인좌의 난 발생
  • 탕평 정치 실시. 탕평책.

탕평비

  • 탕평비 설치 – 1742년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탕평책을 펼쳐 붕당의 다툼을 없애려 한 영조의 의지가 담겨 있다.
  • 준천사를 설치하여 청계천을 준설함으로서 청계천의 범람 피해와 하수처리 문제를 해결
  • 산림 존재 불인정
  • 서원 대폭 정리
  • 이조 전랑 권한 약화
  • 균역법 시행
  • ‘속대전’, ‘속오례의’, ‘동국문헌비고’ 편찬
  • 신문고 부활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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