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조선 후기 사회

25번 문제

25. 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① 벽란도에서 인삼을 구입하는 송의 상인

② 물주의 자금으로 광산을 경영하는 덕대

③ 낙랑군과 교역할 덩이쇠를 주조하는 장인

④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는 경시서의 관리

⑤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 설치를 명하는 국왕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조선 후기 사회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탈놀이와 산대놀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이런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사상의 활동은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평양, 의주, 동래 등 지방 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그들은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였다.

조선 후기 고추와 같은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① 벽란도에서 인삼을 구입하는 송의 상인

고려 시대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물주의 자금으로 광산을 경영하는 덕대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낙랑군과 교역할 덩이쇠를 주조하는 장인

철이 풍부했던 금관 가야는 덩이쇠를 만들어 화폐와 같은 교환 수단으로 이용했다.

또한 풍부한 철의 생산과 해상 교통을 이용하여 낙랑과 왜의 규슈 지방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는 경시서의 관리

고려 시대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 설치를 명하는 국왕

조선 전기, 여진족의 귀순을 장려하기 위하여 관직을 주거나 정착을 위한 토지와 주택을 주어 우리 주민으로 동화시켰다.

또한 여진족과의 사절의 왕래를 통한 무역을 허용하였고, 국경 지방인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두고 국경 무역을 허락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발달
  • 한글 소설의 보급

허균의 홍길동전, 춘향전 등. 한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등장했다.

세책가에서 도서를 대여했다.

  • 판소리

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다. 신재효는 19세기 후반에 이런 판소리 사설을 창작하고 정리하였다.

장시 등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는 판소리와 탈춤 공연이 인기를 얻었다.

  • 탈놀이

탈놀이와 산대놀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이런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 사설 시조

이 시기의 시조에는 서민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경향이 나타났다.

  • 시사(詩社) 조직

역관 등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호인들이 모여 시사를 조직하였다.

  • 정약용

정약용은 삼정의 문란을 폭로하는 한시를 남겼다.

  • 박지원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을 써서 양반 사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실용적 태도를 강조하였다.

  • 회화

회화에서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다.

조선 후기
농민 경제 변화
조선 후기 고구마와 감자가 전래되어 재배

모내기법(이앙법)을 확대하여 벼와 보리의 이모작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증가

광작 – 모내기법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손을 덜 수 있게 되자, 농민은 경작지의 규모를 확대

상품 작물 재배 – 쌀, 목화, 채소, 담배, 인삼 등을 재배하여 판매

수확량의 반(타조법)을 내던 소작료도 일정 액수(도조법)를 곡물이나 화폐로 내도록 하는 변화가 나타남

타조법: 일정 비율로 소작료를 내는 방식

도조법: 일정 액수를 소작료로 내는 방식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
  • 배경

조선 후기 사상의 성장은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발달한 장시를 토대로 하였다.15세기 말 남부 지방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장시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1000여 개소가 개설되었다.

 

  • 장시

장시는 지방민의 교역 장소로, 인근의 농민, 수공업자, 상인이 일정한 날짜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물건을 교환하였는데, 보통 5일마다 열렸다.

일부 장시는 상설 시장이 되기도 하였지만, 인근의 장시와 연계하여 하나의 지역적 시장권을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 대표적 장시

18세기 말의 장시 중에서 광주 송파장, 은진 강경장, 덕원 원산장, 창원 마산포장 등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연결하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다.

 

  • 보부상

농촌의 장시를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시킨 상인은 보부상이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한 행상으로서, 장날의 차이를 이용하여 일정 지역 안이나 전국적인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보부상(褓負商)

보부상이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단결을 굳게 하기 위하여 보부상단이라는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조선 후기
민영 광산의 증가
  • 정부 독점 채굴

광산은 본래 정부가 독점하여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였다.

 

  • 민영 광산 채굴 허용

정부는 17세기 중엽부터 설점수세제를 시행하여 민간인에게 광산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에 의한 광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설점수세제

조선 후기 정부 주도로 설점(設店)하여 광물 채굴을 허가하고 세금을 거둔 제도

 

  • 잠채

광산의 개발은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몰래 채굴하는 잠채도 성행하였다.

 

  • 덕대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덕대(德大)

광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고 광물을 채굴하여 광산을 경영하는 사람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서적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전기 가야 연맹
  • 42년, 김수로에 의해 금관가야 건국. 구지가 건국 신화.
  • 낙동강 유역 일대 세력 범위
  • 덩이쇠를 만들어 화폐와 같은 교환 수단으로 이용
  • 풍부한 철의 생산과 해상 교통을 이용하여 낙랑과 왜의 규슈 지방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이 발달
조선-여진 관계
(4군 6진)
  • 4군 6진

조선은 영토의 확보와 국경 지방의 안정을 위하여 여진에 대하여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펴 나갔다.

우선 태조에 의하여 일찍부터 두만강 지역이 개척되었다.

이어 세종 때에는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4군 6진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최윤덕은 여진족 이만주 부대를 정벌하였다.

 

  • 회유책

조선은 여진족의 귀순을 장려하기 위하여 관직을 주거나 정착을 위한 토지와 주택을 주어 우리 주민으로 동화시켰다.

또, 사절의 왕래를 통한 무역을 허용하였고, 국경 지방인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두고 국경 무역을 허락하였다.

 

  • 토벌 정책

그러나 이러한 교린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진족은 자주 국경을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였고, 이 때마다 조선에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들을 정벌하였다.

 

  • 사민 정책

이와 함께 조선은 삼남 지방의 일부 주민을 대거 북방으로 이주시켜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 지역을 개발하는 사민 정책을 실시하였고, 토착민을 토관으로 임명하여 민심을 수습하려 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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