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고려 원 간섭기

17번 문제

17.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① 주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

② 정동행성에서 회의하는 관리

③ 전환국에서 백동화를 주조하는 기술자

④ 척화비를 세우기 위해 돌을 다듬는 석공

⑤ 별무반에 소속되어 여진 정벌에 나서는 군인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원 간섭기에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갔다.

 

① 주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

발해는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여 귀족 자제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쳤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정동행성에서 회의하는 관리

고려 원 간섭기에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을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전환국에서 백동화를 주조하는 기술자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척화비를 세우기 위해 돌을 다듬는 석공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조선의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별무반에 소속되어 여진 정벌에 나서는 군인

고려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하였다.

1107년 고려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원의
내정간섭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 원의 일본 원정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 정동행성

고려 원 간섭기에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을 했다.

  • 관제 변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 영토 상실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 공녀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 응방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 부마국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남북국의 교육
  • 통일 신라
    • 국학

통일 신라에서는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유학 교육 기관을 설립하였다. 재학 연한은 9년이었으며, 관직에 나아가 관등이 10등 대나마(大奈麻)나 11등 나마(奈麻)에 이르면 졸업하였다.

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그 후, 경덕왕 때에는 국학을 태학으로 고쳤다.

 

    • 독서삼품과 실시

원성왕 때에는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를 채용하는 독서삼품과를 마련하였다.

이 제도는 골품 제도 때문에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는 못하였지만, 학문과 유학을 널리 보급시키는 데 이바지하였다.

 

  • 발해
    • 주자감

발해에서는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여 귀족 자제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쳤다.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 배경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 대한 제국 수립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환구단(원구단)

 

  • 광무개혁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 정치 개혁

대한제국은 1899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 제국이 전제 정치 국가이며, 황제권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등을 모두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여 전제 군주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 경제 개혁
    • 양전 사업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1901년)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 식산흥업 정책

상공업 진흥책이 실시되어,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서 근대적인 공장과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 금본위 지폐 시도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 내장원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 전환국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백동

 

  • 사회 개혁
    • 실업 교육

실업 교육이 강조되었고, 근대 산업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각종의 실업 학교, 상공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도 설립되었다.

관립 상공 학교를 설립하여 실업 교육을 실시하였다.

 

  • 군사 개혁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1899년)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 외교 활동

1899년 대한제국은 <대한국 국제>를 근간으로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척화비 건립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막았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척화비

고려
여진 정벌
고려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하였다.

별무반 –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

1107년 고려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하였다.

1115년, 예종 때 강성해진 여진족은 금을 건국.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금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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