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 문제
27. (가) 국가에 대한 조선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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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신을 보내 검교태보의 직을 받았다.
②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북방의 경계를 정하였다.
③ 공사 부임에 대한 답례로 보빙사를 파견하였다.
④ 조천사라 불리는 하정사, 천추사 등을 보내었다.
⑤ 회답 겸 쇄환사를 파견하여 포로를 송환받았다.
문제 해설
삼학사는 1636년 병자호란 당시 후금과의 강화를 반대하다가 후금에 처형당한 윤집, 오달제, 홍익한 세 사람을 일컫는다.
숭정제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① 사신을 보내 검교태보의 직을 받았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은 오월로부터 검교태보의 직을 받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북방의 경계를 정하였다.
1712년 조선 숙종 때 조선과 청의 두 나라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국경을 확정하여 정계비를 세웠다.
이 정계비에서 양국 간의 국경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공사 부임에 대한 답례로 보빙사를 파견하였다.
조선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천사라 불리는 하정사, 천추사 등을 보내었다.
조선은 명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사대 정책을 유지하였다.
매년 정기적인 하정사·성절사·천추사와 같은 사절과, 부정기적인 사절을 파견하였고, 그 때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회답 겸 쇄환사를 파견하여 포로를 송환받았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4년).
또한 160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를 일본에 파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 조선-명 관계 |
조선은 명과는 태조 때 정도전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요동 정벌의 준비와 여진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불편한 관계가 유지된 적도 있었지만, 태종 이후 양국 간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교류가 활발하였다.
조선은 명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사대 정책을 유지하였으나, 명의 구체적인 내정 간섭은 없었다. 매년 정기적인 하정사·성절사·천추사와 같은 사절과, 부정기적인 사절을 파견하였고, 그 때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명에 대한 이와 같은 사대 외교는 왕권의 안정과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자주적인 실리 외교였고, 선진 문물을 흡수하려는 문화 외교인 동시에 일종의 공무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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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삼국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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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청과의 관계 |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에 대하여 표면상 사대 관계를 맺고 사신이 왕래하면서 교역을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청에 대한 적개심이 오랫동안 남아 있어서 북벌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효종은 청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하게 내세웠던 송시열, 송준길, 이완 등을 높이 등용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성곽을 수리하였으며, 어영청을 중심으로 국방력을 강화하고 북벌을 준비하였다. 그 후, 숙종 때에도 청의 정세 변화를 이용하여 윤휴를 중심으로 북벌 움직임이 제기되었으나, 현실적으로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이 시기에 청은 중국 대륙을 장악한 뒤 국력이 크게 신장되고, 중국의 전통 문화를 보호, 장려하고 서양의 문물까지 받아들여 문화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조선 사신은 귀국 후에 기행문이나 보고서를 통하여 변화하는 청의 사정을 전하였고,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였다. 이후 학자들 중에도 청을 무조건 배척하지만 말고 우리에게 이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배우자는 북학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조선 정부는 청의 수도인 북경에 정기적으로 연행사를 파견했다.
한편, 청은 중국 대륙을 차지한 후에도 그들의 본거지였던 만주 지방에 관심을 기울여 이 지역을 성역화하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일부가 두만강을 건너 인삼을 캐거나 사냥을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청과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이에, 1712년 조선 숙종 때 조선과 청의 두 나라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국경을 확정하여 정계비를 세웠다. 이 정계비에서 양국 간의 국경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고 하였다. 이후 청 정부는 중국인의 간도 이주와 개간을 목적으로 조선인의 간도 철수를 요구하였다. 이에 양국 대표들이 모여 국경을 확정지으려 하였으나, 백두산정계비의 해석을 둘러싸고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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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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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일본과의 관계 |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4년). 또한 160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1607년 부산 두모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년).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들을 쫓아 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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