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통일 신라 경제

7번 문제

7. (가)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① 백성에게 정전이 지급되었다.

②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③ 삼한통보, 해동통보 등이 발행되었다.

④ 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과 교역하였다.

⑤ 담배, 면화 등이 상품 작물로 재배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통일 신라의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남해와 황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였다.

 

① 백성에게 정전이 지급되었다.

통일 신라 성덕왕 때 백성에게 정전이 지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고구려에는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삼한통보, 해동통보 등이 발행되었다.

고려 숙종 때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화폐인 삼한통보, 해동통보 등이 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과 교역하였다.

1678년 조선 후기,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담배, 면화 등이 상품 작물로 재배되었다.

조선 후기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통일 신라 경제
  • 민정(촌락) 문서 – 촌락의 토지 크기, 남녀별·연령별의 정확한 인구 수, 소와 말의 수, 토산물 등을 파악하는 문서를 만들고, 조세, 공물, 부역 등을 거두었으며, 변동 사항을 조사하여 3년마다 문서를 다시 작성

신라 민정(촌락) 문서

  • 상품 생산이 늘어나 이전에 설치된 동시만으로는 상품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서시와 남시를 설치
  •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슬람 상인이 울산에까지 와서 무역
  • 당항성, 영암은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
  •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남해와 황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 중국 산둥반도에 적산 법화원 설립.
  • 산둥 반도와 양쯔 강 하류에 신라인의 거주지인 신라방과 신라촌, 신라인을 다스리는 신라소, 여관인 신라관, 절인 신라원이 만들어짐
고구려
사회 모습
  • 진대법 – 고국천왕 때 먹을거리가 모자란 봄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게 하는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 형사취수제: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사는 혼인 제도이다.
  • 서옥제: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 창고 부경이 있었다.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서적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조선 후기
일본과의 관계
  • 일본의 국교 요청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 조선인 포로 송환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4년).

또한 160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1607년 부산 두모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 기유약조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년).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 통신사 파견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 을릉도와 독도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들을 쫓아 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조선 후기
농민 경제 변화
조선 후기 고구마와 감자가 전래되어 재배

모내기법(이앙법)을 확대하여 벼와 보리의 이모작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증가

광작 – 모내기법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손을 덜 수 있게 되자, 농민은 경작지의 규모를 확대

상품 작물 재배 – 쌀, 목화, 채소, 담배, 인삼 등을 재배하여 판매

수확량의 반(타조법)을 내던 소작료도 일정 액수(도조법)를 곡물이나 화폐로 내도록 하는 변화가 나타남

타조법: 일정 비율로 소작료를 내는 방식

도조법: 일정 액수를 소작료로 내는 방식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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