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20 민경채 언어논리 가책형 13번 – 공물 대동법 방납 광해군

개요

다음은 2020년 국가공무원 민간경력자(민경채) 언어논리영역 가책형 13번 문제다.

문제

문 13. 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조선 시대에는 왕실과 관청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물’이라는 이름으로 백성들로부터 수취하는 제도가 있었다. 조선 왕조는 각 지역의 특산물이 무엇인지 조사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백성들이 내야 할 공물의 종류와 양을 지역마다 미리 규정해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경 변화 등으로 그 물품이 생산되지 않는 곳이 많아졌다. 이에 백성들은 부과된 공물을 상인으로 하여금 생산지에서 구매해 대납하게 했는데, 이를 ‘방납’이라고 부른다.

방납은 16세기 이후 크게 성행했다. 그런데 방납을 의뢰받은 상인들은 대개 시세보다 높은 값을 부르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물품을 대납해 부당 이익을 취했다. 이런 폐단이 날로 심해지자 “공물을 면포나 쌀로 거둔 후, 그것으로 필요한 물품을 관청이 직접 구매하자.”라는 주장이 나타났다. 이런 주장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거세졌다. 한백겸과 이원익 등은 광해군 즉위 초에 경기도에 한해 ‘백성들이 소유한 토지의 다과에 따라 쌀을 공물로 거두고, 이렇게 수납한 쌀을 선혜청으로 운반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구매’하는 정책, 즉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했다. 광해군이 이를 받아들이자 경기도민들은 크게 환영했다. 광해군은 이 정책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것을 알고 경기도 외에 다른 곳으로 확대 시행할 것을 고려했으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는 김육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까지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그런데 그 직후 전국에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제대로 쌀을 구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에 인조는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시행한다는 결정을 철회했다.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은 전라도 일부 지역과 충청도가 흉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 그 지역들에 대동법을 다시 시행했고, 효종을 이은 현종도 전라도 전역에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이처럼 대동법 시행 지역은 조금씩 늘어났다.

① 현종은 방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대동법을 전국 모든 지역에 시행하였다.

② 효종은 김육의 요청대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대동법을 적용하였다.

③ 광해군이 국왕으로 재위할 때 공물을 쌀로 내게 하는 조치가 경기도에 취해졌다.

④ 인조는 이원익 등의 제안대로 방납이라는 방식으로 공물을 납부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였다.

⑤ 한백겸은 상인이 관청의 의뢰를 받아 특산물을 생산지에서 구매해 대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현종은 방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대동법을 전국 모든 지역에 시행하였다.

광해군이 이를 받아들이자 경기도민들은 크게 환영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는 김육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까지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효종은 전라도 일부 지역충청도가 흉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 그 지역들에 대동법을 다시 시행했고, 효종을 이은 현종전라도 전역에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광해군 때부터 시행된 대동법은 전국 모든 지역이 아닌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됐다. 현종은 인조 때 흉년으로 대동법이 철회됐던 전라도 전역에 대동법을 다시 시행했을 뿐 전국 모든 지역에 시행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효종은 김육의 요청대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대동법을 적용하였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는 김육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까지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전라도 일부 지역과 충청도가 흉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 그 지역들에 대동법을 다시 시행했고

김육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동법을 확대 시행한 것은 인조다.

효종은 전라도 일부 지역과 충청도가 흉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 그 지역들에 대동법을 다시 시행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광해군이 국왕으로 재위할 때 공물을 쌀로 내게 하는 조치가 경기도에 취해졌다.

한백겸과 이원익 등은 광해군 즉위 초에 경기도에 한해 ‘백성들이 소유한 토지의 다과에 따라 쌀을 공물로 거두고, 이렇게 수납한 쌀을 선혜청으로 운반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구매’하는 정책, 즉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했다. 광해군이 이를 받아들이자 경기도민들은 크게 환영했다. 광해군은 이 정책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것을 알고 경기도 외에 다른 곳으로 확대 시행할 것을 고려했으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광해군이 즉위하고 나서 쌀을 공물로 거두는 대동법을 시행했다. 대동법으로 경기도민들은 크게 환영했다. 경기도 외에 다른 곳으로 확대 시행할 것을 고려했다는 내용으로 대동법이 경기도에 취해졌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인조는 이원익 등의 제안대로 방납이라는 방식으로 공물을 납부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였다.

한백겸과 이원익 등은 광해군 즉위 초에 경기도에 한해 ‘백성들이 소유한 토지의 다과에 따라 쌀을 공물로 거두고, 이렇게 수납한 쌀을 선혜청으로 운반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구매’하는 정책, 즉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했다.

인조는 김육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까지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그런데 그 직후 전국에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제대로 쌀을 구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에 인조는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시행한다는 결정을 철회했다.

이원익은 광해군에게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한 인물이다.

인조는 김육의 주장대로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지만 흉년이 들어 일부 지역에서 대동법 시행을 철회했을 뿐 전면 금지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한백겸은 상인이 관청의 의뢰를 받아 특산물을 생산지에서 구매해 대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백성들은 부과된 공물을 상인으로 하여금 생산지에서 구매해 대납하게 했는데, 이를 ‘방납’이라고 부른다.

방납은 16세기 이후 크게 성행했다. 그런데 방납을 의뢰받은 상인들은 대개 시세보다 높은 값을 부르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물품을 대납해 부당 이익을 취했다. 이런 폐단이 날로 심해지자 “공물을 면포나 쌀로 거둔 후, 그것으로 필요한 물품을 관청이 직접 구매하자.”라는 주장이 나타났다. 이런 주장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거세졌다. 한백겸과 이원익 등은 광해군 즉위 초에 경기도에 한해 ‘백성들이 소유한 토지의 다과에 따라 쌀을 공물로 거두고, 이렇게 수납한 쌀을 선혜청으로 운반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구매’하는 정책, 즉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했다.

백성들에게 부과된 공물을 상인으로 하여금 생산지에서 구매해 대납하는 것을 ‘방납’이라고 하는데 방납으로 인한 폐해로 공물을 면포나 쌀로 거두자는 주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원익은 광해군에게 씰을 공물로 거두는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했다. 하지만 ‘방납’이 부당하다고 했다는 내용은 지문에서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2020 민경채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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