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한능검 심화 50번 기출 해설 – 부산 지역 역사

50번 문제

50. (가)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웠다.

② 학생들이 2 · 28 민주 운동을 주도하였다.

③ 김사미가 가혹한 수탈에 맞서 봉기하였다.

④ YH 무역 노동자들이 폐업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⑤ 박재혁이 경찰서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의거를 일으켰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부산 지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다.

 

①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웠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웠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학생들이 2 · 28 민주 운동을 주도하였다.

1960년 3.15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야당 부통령 후보 연설에 학생들이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 등교 조치를 내리자, 이에 반발한 대구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것이 2 · 28 민주 운동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김사미가 가혹한 수탈에 맞서 봉기하였다.

1193년 고려 무신 정권기,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YH 무역 노동자들이 폐업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1979년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YH 무역 노동자들이 부당한 공장 폐쇄에 맞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강제로 진압하였고, 이에 항의하던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박재혁이 경찰서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의거를 일으켰다.

1920년 의열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부산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다.

1609년 일본과의 기유약조 체결 이후 초량에 왜관이 지어졌다.

범어사가 있다.

독립 협회가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시켰다.

부산항은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이 부산의 백산 상회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1920년 의열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충주 신석기 시대 – 조동리 유적에서 빗살무늬 토기 출토

충주 중원 고구려비

고려 시대 – 김윤후의 대몽 항쟁, 세곡 운송을 담당한 덕흥창 설치

조선 시대 –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

조선 후기 –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 의병장

대구 후삼국 시대 공산 전투. 신숭겸 장군이 왕건을 대신하여 죽었다.

부인사지 – 고려시대 초조대장경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약령시 – 조선 후기 상업 발달에 의해 성장했다.

국채 보상 운동 – 1907년 2월 대구에서 광문사의 부사장이었던 서상돈이 국채 보상 운동을 발의했다.

1960년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는 2 · 28 민주 운동이 일어났다.

청도 김사미·효심의 난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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