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최승로 시무 28조

11번 문제

11. 밑줄 그은 ‘이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① 흑창이 의창으로 개편되었다.

② 관학 진흥을 위해 양현고가 설치되었다.

③ 광덕, 준풍 등 독자적 연호가 사용되었다.

④ 김부식 등이 왕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⑤ 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 사업이 추진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성종 때 최승로는 시무 28조를 올려 유교 정치사상을 통치의 근본 이념으로 삼고 여러 제도의 정비를 요구하였다.

또한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며 국자감을 세워 유학을 진흥하였다.

 

① 흑창이 의창으로 개편되었다.

고려 태조 때 설치됐던 흑창이 의창으로 개칭, 확대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관학 진흥을 위해 양현고가 설치되었다.

고려 예종 때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광덕, 준풍 등 독자적 연호가 사용되었다.

고려 광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김부식 등이 왕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고려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1145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 사업이 추진되었다.

1366년 고려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고려 성종
  • 시무 28조

최승로는 시무 28조를 올려 유교 정치사상을 통치의 근본 이념으로 삼고 여러 제도의 정비를 요구

  • 2성 6부제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한 2성 6부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관제도 새로 마련

  • 12목

983년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지방관을 파견

  • 향리 제도

지방관을 파견하고 향리 제도를 마련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

  • 유학 교육 진흥

국자감을 정비하고, 지방에 경학 박사와 의학 박사를 파견하여 유학 교육의 진흥에 노력

  • 의창

태조 때 설치됐던 흑창이 의창으로 개칭, 확대

  • 상평창

물가를 조절하여 빈민을 구제하던 기관인 상평창 설치

  • 건원중보

철전인 건원중보가 만들어짐

  • 강동 6주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

  • 노비환천법

광종 때 노비안검법으로 노비에서 양인이 된 자를 노비로 다시 환원하는 법을 제정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사학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고려 광종
  • 노비안검법

956년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

  • 과거 제도

958년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

  • 공복 제정

지배층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백관의 공복 제정

  • 칭제 건원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황제를 칭하고(외왕내제),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

고려
역사서 편찬
  • 7대 실록(1034년)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왕조실록을 편찬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이에,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는 7대 실록을 현종 때 편찬하기 시작하여 덕종 때 완성하였다.

  • 삼국사기(1145년)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본기, 연표, 잡지, 열전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신라 계승 의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 해동고승전(1215년)

각훈이 쓴 해동고승전은 삼국 시대의 승려 30여 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 동명왕편(1193년)

고려 명종 때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 서사시로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또한 무신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 삼국유사(1281년)

충렬왕 때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하는 등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으며,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 제왕운기(1287년)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서술하면서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내었다.

  • 사략(1357년)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하였는데, 지금은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 전한다.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하고, 몽골 풍속을 금지
  • 1356년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1366년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8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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