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3번 해설 – 통일 신라 말의 정치 변동

3번 문제

3. 다음 자료의 상황이 나타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진성 여왕 3년, 여러 고을에서 정부로 세금을 보내지 않는 바람에 창고가 비어 재정이 궁핍해졌다. 이에 왕이 사람을 보내 독촉하니 곳곳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때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① 수선사 결사 운동에 참여한 승려

② 일본 원정을 준비하는 정동행성 관리

③ 당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6두품 지식인

④ 신라에 침입한 왜군과 싸우는 고구려 군사

⑤ 청에게 당한 치욕을 갚자며 북벌을 주장하는 학자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780년).

이후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위 자료는 통일 신라 말인 889년에 발생한 원종과 애노의 난에 대한 내용이다.

 

① 수선사 결사 운동에 참여한 승려

고려 승려 지눌은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독경과 선 수행, 노동에 고루 힘쓰자는 개혁 운동인 수선사 결사를 제창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일본 원정을 준비하는 정동행성 관리

고려 원 간섭기에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을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당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6두품 지식인

통일 신라 말 당에 유학하였다가 돌아온 6두품 출신의 일부 유학생과 선종 승려 등은 신라 골품제 사회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진골 귀족에 의하여 자신들의 뜻을 펼 수 없게 되자, 은거하거나 지방의 호족 세력과 연계하여 사회 개혁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신라에 침입한 왜군과 싸우는 고구려 군사

400년 신라에 침입한 왜의 세력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머물렀다(신라 구원).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청에게 당한 치욕을 갚자며 북벌을 주장하는 학자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오랑캐에 당한 수치를 씻고, 임진왜란 때 도와 준 명에 대한 의리를 지켜 청에 복수하자는 북벌 운동이 전개되었다.

청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효종은 청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하게 내세웠던 송시열, 송준길, 이완 등을 높이 등용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성곽을 수리하였으며, 어영청을 중심으로 국방력을 강화하고 북벌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9학년도(2018)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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