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공민왕

15번 문제

15.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① 초량 왜관에서 교역하는 상인

② 내의원에서 동의보감을 읽는 의원

③ 주자감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학생

④ 전민변정도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농민

⑤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에 참여하는 장인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공민왕 때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했다.

또한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했다.

 

① 초량 왜관에서 교역하는 상인

조선 후기인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내의원에서 동의보감을 읽는 의원

조선 후기 광해군 때 허균이 동의보감을 편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주자감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학생

주자감은 발해의 중앙 교육 기관이었따.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전민변정도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농민

고려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에 참여하는 장인

신라 선덕여왕 때 황룡사 구층 목탑이 건립되었따.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조선 후기
일본과의 관계
  • 일본의 국교 요청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 조선인 포로 송환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4년).

또한 160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1607년 부산 두모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 기유약조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년).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 통신사 파견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 을릉도와 독도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들을 쫓아 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
  • 중립 외교

명에 요청에 따라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파견하였다. 하지만 조⋅명 연합군은 후금군에게 패하였고, 사르후 전투에 참전했던 강홍립 등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명의 원군 요청은 계속되었지만, 광해군은 후금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중립 외교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사림은 이를 명에 대한 배신 행위로 간주하였다.

 

  • 인조반정

일부 사림은 명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내세워 광해군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였다.

게다가 광해군과 북인 정권은 왕권의 안정을 이루고자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유교 윤리에 어긋나는 정치를 펴 도덕적으로 큰 약점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이를 빌미로 서인이 인조반정을 일으킴으로써 광해군은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 기타

허준, 동의보감 편찬

경기도에 대동법 시행

발해 통치 체제
  • 중앙 정치 조직 – 3성 6부,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 좌·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
  • 최고 행정 기관인 정당성의 장관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
  • 중앙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 설치
  •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
  •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둠
  • 서적 관리, 주요 문서 작성 등을 위해 문적원을 설치
  • 관리의 비리 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중정대 설치
신라
선덕 여왕
  • 자장의 건의에 따라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
  • 첨성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
  •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진압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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