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통일 신라 말의 정치 변동

7번 문제

7. (가), (나) 사이의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① 계백료서를 읽는 관리

② 녹읍 폐지를 명하는 국왕

③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

④ 초조대장경을 조판하는 장인

⑤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 군인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 통일 신라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예정된 김주원 대신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나) 889년 원종과 애노의 난이 일어났다.

 

① 계백료서를 읽는 관리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계백료서를 남겼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녹읍 폐지를 명하는 국왕

689년 통일 신라 신문왕이 녹읍을 혁파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

성균관은 고려와 조선의 중앙 교육 기관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초조대장경을 조판하는 장인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에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려고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 군인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원성왕의 즉위로부터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김헌창의 난 822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780년).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 96각간의 난

768년 혜공왕 때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각간들이 군사를 일으켜 권력 다툼을 벌였다.

 

  • 김헌창의 난(822년)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예정된 김주원 대신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822년).

 

  • 장보고의 난

846년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적고적의 난

지방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신라
신문왕
  • 김흠돌의 난(618년)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
  • 687년 관료전 지급
  • 689년 녹읍 폐지
  •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
  • 만파식적
  •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인을 포함한 군대인 9서당을 편성
  • 감은사 건립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고려
대장경 간행
  • 대장경 간행

고려에서는 불교 사상에 대한 이해 체계가 정비되면서 불교에 관련된 서적을 모두 모아 체계화하는 대장경이 편찬되었다.

경⋅율⋅논의 삼장으로 구성된 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교리 체계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적 의의가 높은 유산이다.

 

  • 초조대장경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려고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70여 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목판에 새겨 간행한 이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에 불타 버리고 인쇄본 일부가 남아 고려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 속장경(교장)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얼마 후, 의천은 고려는 물론이고 송과 요의 대장경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속장경(교장)을 편찬하였다.

이를 위하여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고,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10여년에 걸쳐 신라인의 저술을 포함한 4700여 권의 전적을 간행하였다.

 

  •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 만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잘못된 글자나 빠진 글자가 거의 없는 제작의 정밀성과 글씨의 아름다움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장경으로 꼽힌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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