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대한 광복회

38번 문제

38.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① 중일 전쟁 발발 직후에 결성되었다.

② 군대식 조직을 갖춘 비밀 결사였다.

③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였다.

④ 일제가 꾸며낸 105인 사건으로 와해되었다.

⑤ 만민 공동회를 열어 열강의 이권 침탈을 비판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대한 광복회에 대한 내용이다.

1915년 박상진, 김좌진 등은 대구에서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① 중일 전쟁 발발 직후에 결성되었다.

중일 전쟁은 1937년에 발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군대식 조직을 갖춘 비밀 결사였다.

대한 광복회는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독립군 양성, 무기 구입, 군자금 모집, 친일 부호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상덕태상회를 통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9년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일제가 꾸며낸 105인 사건으로 와해되었다.

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만민 공동회를 열어 열강의 이권 침탈을 비판하였다.

1898년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열어 열강의 이권 침탈을 비판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1910년대
국내 비밀 결사
  • 독립 의군부(1912년)

임병찬 등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국내에서 전국 각지의 유생들을 모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복벽주의 이념에 따라 고종의 복위를 목표로 전국적인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와 일본 정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내려고 계획하던 중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체되었다.

 

  • 대한 광복회(1915년)

박상진, 김좌진 등은 대구에서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대한 광복회는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독립군 양성, 무기 구입, 군자금 모집, 친일 부호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상덕태상회를 통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 송죽회(1913년)

평양 숭의 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송죽회를 결성하여 국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의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였다.

1910년대
국외 민족 운동
  • 서간도(남만주) – 삼원보, 신한민촌, 경학사, 신흥 강습소(신흥 무관 학교)

국권 피탈 이후 서간도로 이주한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 이상룡 등은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에 신한민촌을 건설하였고, 이곳에서 자치 기관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지치 기관인 경학사는 부민단, 한족회로 발전하면서 서로 군정서를 조직하였다.

신흥 강습소는 군사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이후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였다.

 

  • 북간도 – 서전서숙, 명동 학교, 중광단

북간도로 이주한 동포들은 용정촌, 명동촌 등 한인 집단촌을 형성하고 간민회 등의 자치 단체를 만들어 동포 사회를 이끌었다.

이상설, 김약연 등은 각각 서전서숙과 명동 학교 등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대종교는 북간도로 거점을 옮겼고, 서일 등 신자 중 일부가 무장 독립 단체인 중광단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3·1 운동 이후 북로 군정서로 개편하였다.

 

  • 북만주 – 한흥동

이상설, 이승희 등은 북만주 밀산부에 독립운동 기지인 한흥동을 건설하였다.

 

  • 연해주 – 신한촌, 권업회, 대한 광복군 정부

연해주로 이주한 동포들에 의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이 만들어졌고, 자치 단체인 권업회가 조직되어 한인들의 권익 신장에 힘썼다. 권업회는 권업신문을 발행하였다. 권업회의 초대 회장은 최재형이었다.

1914년 이상설과 이동휘를 정·부통령으로 하는 대한 광복군 정부가 조직되었다.

이외 한인 단체인 전로 한족회 중앙 총회가 결성되었고, 이동휘 등이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 사회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 중국 – 동제사, 박달 학원, 신한 청년당 김규식, <대동단결선언>

중국 상하이에서 동제사(1912년), 박달 학원(1913년) 등이 조직되었다.

1912년 7월 신규식과 박은식 등은 상하이에서 동제사를 조직하였다. 조소앙은 1913년에 참여하였다. 동제사는 장차 전개될 독립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교육을 중시했고, 중국의 각종 군사교육기관을 통해 100여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15년 베이징에서는 신규식, 박은식 등이 신한 혁명당을 조직하였다. 1917년에는 신규식, 조소앙 등이 국민 주권론과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9년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 미주 – 대한인 국민회, 흥사단, 대조선 국민 군단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한국인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미주 지역에 한인 동포 사회가 형성되었다.

1905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한국인들이 이주하여 에네켄 농장에서 가혹한 노동 생활을 하였다. 1910년에는 숭무학교가 설립되어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08년에 장인환과 전명운이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사건을 계기로 1910년 안창호 등이 대한인 국민회가 결성하였다. 대한인 국민회는 신한민보를 발행하였다.

1913년에는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1914년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대조선 국민 군단을 조직하여 군사 훈련을 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무총장 노백린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독립군 비행사 양성을 위해 한인 비행 학교를 설립하였다.

애국 계몽 운동
  • 보안회(1904년)

보안회는 토지 약탈을 목적으로 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 운동을 벌여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 헌정 연구회(1905년)

독립 협회에 영향을 받은 헌정 연구회는 국민의 정치 의식 고취와 입헌 정체의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 대한 자강회(1906년)

대한 자강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15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나,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의 퇴위를 강요하자, 격렬한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체되었다.

대한 자강회 취지문

국민의 지혜를 열고 국가의 힘을 기르는 길은 교육과 산업의 발달에 달려 있다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교육과 산업의 발달이 곧 자강의 방도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이 자강의 목적을 관철하기를 바랄진대 부득불 먼저 그 국민의 정신을 배양하여 단군과 기자 이래 4천 년 한국의 정신으로 2천만 모든 사람의 정신 속에 흐르도록 하여, 한 번 숨을들이고 내쉬는 시간에도 자기 나라 정신을 잊지 않게 만든 연후에야 바야흐로 자강의 마음을 단련하고 국권 회복의활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 대한 협회(1907년)

대한 협회는 대한 자강회를 계승하여 교육의 보급, 산업의 개발, 민권의 신장, 행정의 개선 등을 강령으로 내걸고,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한국 지배권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대한 협회의 국권 회복에 대한 의지가 크게 약화되었다.

 

  • 신민회

신민회는 1907년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를 망라하여 조직된 비밀 결사였다.

안창호, 양기탁 등을 지도부로 하였다.

신민회는 국권의 회복과 공화 정체의 국민 국가 건설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표면적으로는 문화적,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독립군 기지의 건설에 의한 군사적 실력 양성을 기도하였다.

 

    •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 태극 서관과 자기 회사

신민회는 평양과 서울에 설립된 태극 서관에서 계몽 서적을 출판하였다. 또한 평양에 자기 회사를 세워 민족 산업의 육성에도 힘썼다.

 

    • 신흥 강습소(신흥 무관 학교)

만주에 독립군 기지(삼원보)를 건설하고, 신흥 무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기르는 데 힘을 기울였다.

 

    • 해산

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독립 협회
  • 배경 – 아관파천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 파천이라고 한다.

  • 열강의 이권 침탈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국가의 자주성은 손상되었고,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졌으며, 집권층은 친러적인 성향을 드러내었다.

외세의 침투가 계속되어 나라의 자주권이 크게 위협을 당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나라의 자주 독립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 독립 협회 창립

갑신정변의 주동자로 미국에 망명해 있던 서재필이 귀국하였다.

그는 자유 민주주의적 개혁 사상을 민중에 보급하고, 국민의 힘으로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자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 협회를 창립하였다(1896년).

  • 독립 협회 활동
    • 독립문과 독립관

독립 협회는 첫 사업으로서 국민의 성금을 모아 영은문 자리에 자주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수하는 등 국민의 자주 독립 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독립 협회는 독립관에서 교육과 산업 진흥, 자주독립 등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민중을 계몽하였다.

 

  • 자주 국권 운동
    • 만민 공동회

이 무렵, 러시아의 침략적 간섭은 여전하였다.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파견하고, 한러 은행 설립, 절영도 조차 등 이권 침탈을 시도하였다. 또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져 갔다.

이에 독립 협회 회원들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중 대회인 만민 공동회를 열었다(1898년).

만여 명의 시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종로 광장에서 열린 만민 공동회에서는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고, 대한의 자주 독립권을 지키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여 이를 정부에 건의하였다.

이후, 독립 협회는 수시로 만민 공동회를 열고, 외국의 내정 간섭과 이권 요구 및 토지 조차 요구 등에 대항하여 국권과 국익을 수호하려는 자주 국권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결국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철수시키고, 절영도 조차 요구를 철회하였다.

 

  • 자주 민권 운동
    • 국민 참정권 운동

자주 국권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힘이 증대되고 민권 의식이 고양되어 자유 민권 운동도 전개되었다.

나아가, 민의를 국정에 반영하여 근대 개혁을 추진하려는 국민 참정권 운동도 전개하였다.

그 후, 독립 협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4천여 명의 회원을 가진 민중의 대표 기관으로 성장하여, 의회 설립에 의한 국민 참정 운동과 국정 개혁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독립 협회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하여 보수적 내각을 퇴진시키고, 박정양의 진보적 내각을 수립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 자강 개혁 운동
    • 관민 공동회

1898년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에 정부 대신들을 합석시켜 관민 공동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백정 출신인 박성춘이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열강의 이권침탈 방지를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였다.

 

    • 헌의 6조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및 정치 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았다.

관민 공동회의 헌의 6조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 것.

2.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인하여 시행할 것.

3. 국가 재정은 탁지부에서 전관하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할 것.

4.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을 임명할 때에는 정부에 그 뜻을 물어서 중의에 따를 것.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 중추원 관제 반포(1898년)

독립 협회는 정부와 협상을 벌여 관선 의원과 민선 의원을 같은 수로 하는 의회식 중추원 관제를 반포하게 하여,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회가 설립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 독립 협회의 해산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은 고종에게 독립 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고 모함하여, 박정양 내각을 무너뜨리고 독립 협회도 해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황국 협회를 이용하여 만민 공동회를 탄압하였고, 결국은 병력을 동원하여 민중들의 정치 활동을 봉쇄하였다.

황국 협회(皇國協會)

전국의 보부상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보수 세력은 이들에게 만민 공동회가 열리는 곳에서 소란을 피우게 한 다음, 이를 빌미로 독립 협회를 해산하였다.

 

  • 독립 협회의 의의

독립 협회의 활동은 민중을 개화 운동과 결합시켜 근대적 민중 운동을 일으켰고, 민중에 의한 자주적인 근대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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