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조선 후기 경제

26번 문제

26. 다음 일기가 작성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① 상평통보가 화폐로 사용되었다.

② 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③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④ 보부상이 장시를 돌아다니며 상품을 판매하였다.

⑤ 국경 지대에서 개시 무역과 후시 무역이 이루어졌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조선 후기의 모습에 대한 내용이다.

조선 후기 쌀, 목화, 채소, 담배, 인삼 등과 같은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조선 후기 모내기법(이앙법)을 확대하여 벼와 보리의 이모작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① 상평통보가 화폐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상평통보가 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신라 지증왕 때 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이라는 어용 상인이 나타났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보부상이 장시를 돌아다니며 상품을 판매하였다.

조선 후기 농촌의 장시를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시킨 상인은 보부상이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한 행상으로서, 장날의 차이를 이용하여 일정 지역 안이나 전국적인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국경 지대에서 개시 무역과 후시 무역이 이루어졌다.

개시 무역은 조선 후기 중국, 일본 등을 상대로 공적으로 열었던 대외 교역 시장이었다.

후시 무역은 조선 후기 사상들이 전개한 밀무역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②번이다.

 

조선 후기
농민 경제 변화
조선 후기 고구마와 감자가 전래되어 재배

모내기법(이앙법)을 확대하여 벼와 보리의 이모작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증가

광작 – 모내기법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손을 덜 수 있게 되자, 농민은 경작지의 규모를 확대

상품 작물 재배 – 쌀, 목화, 채소, 담배, 인삼 등을 재배하여 판매

수확량의 반(타조법)을 내던 소작료도 일정 액수(도조법)를 곡물이나 화폐로 내도록 하는 변화가 나타남

타조법: 일정 비율로 소작료를 내는 방식. 도조법: 일정 액수를 소작료로 내는 방식

조선 후기
화폐 유통
  • 상평통보 유통

조선 후기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교환의 매개로서 금속 화폐, 즉 동전이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세금과 소작료도 동전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누구나 동전인 상평통보만 가지면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상평통보

 

  • 전황 발생

이 시기에 동전은 교환 수단일 뿐 아니라 재산 축적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동전의 발행량이 상당히 늘어났는데도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시중에서 동전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지주나 대상인들이 화폐를 고리대나 재산 축적에 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 신용 화폐 등장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환, 어음 등의 신용 화폐가 점차 보급되어 갔다. 이는 이 시기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과 상업 자본의 성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
  • 배경

조선 후기 사상의 성장은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발달한 장시를 토대로 하였다.15세기 말 남부 지방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장시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1000여 개소가 개설되었다.

 

  • 장시

장시는 지방민의 교역 장소로, 인근의 농민, 수공업자, 상인이 일정한 날짜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물건을 교환하였는데, 보통 5일마다 열렸다.

일부 장시는 상설 시장이 되기도 하였지만, 인근의 장시와 연계하여 하나의 지역적 시장권을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 대표적 장시

18세기 말의 장시 중에서 광주 송파장, 은진 강경장, 덕원 원산장, 창원 마산포장 등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연결하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다.

 

  • 보부상

농촌의 장시를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시킨 상인은 보부상이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한 행상으로서, 장날의 차이를 이용하여 일정 지역 안이나 전국적인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보부상(褓負商)

보부상이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단결을 굳게 하기 위하여 보부상단이라는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조선 후기
중계 무역
  • 개시와 후시
    • 개시 무역

조선 후기 중국, 일본 등을 상대로 공적으로 열었던 대외 교역 시장이었다.

압록강 하류에서 열리는 중강 개시와 함경도의 회령 개시 및 경원 개시, 동래의 왜관 개시 등이 열렸다.

 

    • 후시 무역

조선 후기 사상들이 전개한 밀무역이었다.

조선에서 중국으로 사신을 보낼 때 중국의 회동관에서 이루어진 회동관 후시, 중강에서 이루어진 중강 후시, 의주 맞은편의 책문에서 이루어진 책문 후시가 대표적이다.

또 함경도 경원 등에서 야인들과 거래한 북관 후시, 부산 등의 왜관에서 왜인들과 거래한 왜관 후시가 있었다.

 

  • 청과의 무역

17세기 중엽부터 청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공적으로 허용된 무역인 개시와 사적인 무역인 후시가 이루어졌다.

청에서 수입하는 물품은 비단, 약재, 문방구 등이었고, 수출하는 물품은 은, 종이, 무명, 인삼 등이었다.

 

  • 일본과의 무역

17세기 이후로 일본과의 관계가 점차 정상화되면서 왜관 개시를 통한 대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선은 인삼, 쌀, 무명 등을 팔고, 청에서 수입한 물품들을 넘겨주는 중계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은, 구리, 황, 후추 등을 수입하였다.

 

  • 대표적 상인

이러한 국제 무역에서 사적인 무역이 허용되면서 상인이 무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 중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상인은 의주의 만상과 동래의 내상이었으며, 개성의 송상은 양자를 중계하며 큰 이득을 남기기도 하였다. 특히, 의주의 만상은 대중국 무역을 주도하면서 재화를 많이 축적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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