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번 31번 문제
[30~31] 다음 자료를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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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가)~(다)를 작성한 인물에 대해 탐구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① (가) –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며, 성리학의 보급에 기여하였다.
② (가) – 칠대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문헌공도를 만들어 사학을 진흥시켰다.
③ (나) – 금석학을 연구하여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다.
④ (다) – 한국통사를 저술하였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⑤ (다) –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였으며, 폭력을 통한 민중의 직접 혁명을 주장하였다.
31. 밑줄 그은 ㉠, ㉡에 해당하는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 – 불교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를 수록하였다.
② ㉠ – 본기, 연표, 잡지, 열전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 사서이다.
③ ㉡ – 사초와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편찬하였다.
④ ㉡ – 고구려 건국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로 표현하였다.
⑤ ㉠, ㉡ –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단군 조선으로 삼았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0번 문제 해설
(가) 폐하께서 삼국의 역사를 편집하도록 명하셨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김부식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기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나) 조선 후기 유득공에 의해 편찬된 발해고에 대한 내용이다.
(다) 신채호가 편찬한 조선상고사에 대한 내용이다.
① (가) –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며, 성리학의 보급에 기여하였다.
이제현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가) – 칠대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문헌공도를 만들어 사학을 진흥시켰다.
최충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나) – 금석학을 연구하여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다.
김정호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다) – 한국통사를 저술하였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박은식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다) –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였으며, 폭력을 통한 민중의 직접 혁명을 주장하였다.
신채호에 대한 내용이다.
의열단원들은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민중 직접 혁명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31번 문제 해설
㉠은 삼국사기, ㉡은 발해고이다.
① ㉠ – 불교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를 수록하였다.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 – 본기, 연표, 잡지, 열전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 사서이다.
삼국사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 – 사초와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편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 – 고구려 건국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로 표현하였다.
이규보가 지은 동명왕편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 ㉡ –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단군 조선으로 삼았다.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 고려 역사서 편찬 |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왕조실록을 편찬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이에,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는 7대 실록을 현종 때 편찬하기 시작하여 덕종 때 완성하였다.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본기, 연표, 잡지, 열전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신라 계승 의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각훈이 쓴 해동고승전은 삼국 시대의 승려 30여 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고려 명종 때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 서사시로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또한 무신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충렬왕 때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하는 등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으며,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서술하면서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내었다.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하였는데, 지금은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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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국학 연구 |
실학의 발달과 함께 민족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우리의 역사, 지리, 국어 등을 연구하는 국학이 발달하였다.
이익은 실증적이며 비판적인 역사 서술을 제시하고,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민족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익의 제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저술하여 이익의 역사 의식을 계승하였다.
이긍익은 조선 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정리하여 연려실기술을 저술하였다.
한치윤은 500여 종의 중국 및 일본의 자료를 참고하여 해동역사를 편찬하여 민족사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종휘는 동사에서 고구려 역사 연구를 하였다.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발해사 연구를 심화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신라의 통일은 불완전한 것이고, 북쪽에 발해가 있었으므로 이를 남북국이라 불러야 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
국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여 우수한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역사 지리서로 한백겸의 동국지리지가 나왔다.
역사 지리서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등이 나왔다.
인문 지리서로 이중환의 택리지가 편찬되었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 생활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에서 서양식 지도가 전해짐에 따라 정밀하고 과학적인 지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영조 시기 제작된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최초로 100리척을 사용하여 정확하고 과학적인 지도 제작에 공헌하였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산맥, 하천, 포구, 도로망의 표시가 정밀하고, 거리를 알 수 있도록 10리마다 눈금이 표시되었으며,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신경준의 음운 연구서인 훈민정음운해가 나왔다.
유희의 음운 연구서인 언문지가 나왔다.
우리의 방언과 해외 언어를 정리한 이의봉의 고금석림이 편찬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이 발달하고 문화 인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백과 사전류의 저서가 많이 편찬되었다.
이 방면의 효시가 된 책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다.
성호사설에서 이익은 나라가 가난하게 된 원인은 노비 제도, 과거 제도, 양반 제도 등이 잘못된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고리대 활동과 농민의 게으름도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영⋅정조 때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되었는데, 이 책은 우리 나라의 역대 문물을 정리한 한국학 백과 사전이다.
김정희는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다.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편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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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거나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제는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을 주장하는 식민주의 사관을 앞세워 한국사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부정하였다.
1925년 조선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 편수회는 식민주의 사관을 토대로 조선사를 편찬하여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다.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의 발전 주체가 우리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학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힘을 기울였다.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다. 또한 그는 민족 정신을 혼(魂)으로 파악하여, 혼이 담겨 있는 민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를 지어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였다. 여기에서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독사신론을 저술하였다. 신채호는 낭가 사상을 강조하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민족주의 사학은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등으로 계승되었고, 이들은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인보는 ‘얼’ 사상을 강조하였다. 문일평은 ‘조선심’을 강조했다. 다산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아 여유당전서를 간행했다.
실증 사학자들은 문헌 고증으로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역사가의 주관적인 판단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이병도 등은 1934년 진단 학회를 조직하고 진단 학보를 발간하였다.
1930년대에는 백남운 등에 의해 사회 경제 사학이 대두되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의 입장에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였다.
손진태는 조선민족사개론을 저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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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성리학의 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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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교육 기관 |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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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1월 신흥 무관 학교 출신인 김원봉, 윤세주 등은 만주 지린성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의열단원들은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민중 직접 혁명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의열단은 일제의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5파괴, 7가살)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박재혁 – 1920년 부산경찰서에 폭탄 투척 김익상 – 1921년 조선 총독부에 폭탄 투척 김상옥 – 1923년 종로 경찰서에 폭탄 투척 김지섭 – 1924년 일본 도쿄 궁성 폭탄 투척 나석주 – 1926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에 폭탄 투척
의열단은 1920년대 후반부터 개인 폭력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조직적인 항일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의열단원들은 중국 황푸 군관 학교에 입학하여 정규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30년대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세워 독립운동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의열단은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중국 관내 대부분의 민족 운동 단체를 통합한 민족 혁명당 결성(1935년)을 주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민 대표 회의 이후 침체를 겪었다. 또한 1931년 만보산 사건 이후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이 나빠지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어려워졌다. 김구는 1931년 임시 정부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이봉창은 일본 도쿄에서 천황이 타고 가는 마차에 폭탄을 던져 일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중국 상하이를 침략하였다(상하이 사변).
1932년 상하이 사변에서 승리한 일제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이때 윤봉길이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주요 장성과 고관들을 처단하였다.
한국 애국단의 의거로 인해 중국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크게 호전되었으며,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중국 영토 내에서 한국광복군이 조직되는 토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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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앙 정치 체제 |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의 중앙 관직인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의정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 기관이었다. 3정승의 합의에 의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였다.
6조는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6조는 국가의 행정을 나누어 맡았다. 6조의 판서(장관)들은 행정만을 맡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에는 의정부의 재상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루어졌다.
3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말한다. 3사의 언론은 고관은 물론이고 왕이라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정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3사의 기능 강화는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정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사헌부는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았다. 또한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등을 관장했다. 사헌부의 수장은 대사헌이다.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사간원은 왕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왕에게 간언, 논박. 사간원의 수장은 대사간이다.
홍문관은 왕의 정치 자문과 왕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을 토론하는 경연을 담당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이라고 불렀다.
의금부는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과 같은 국가의 큰 죄인을 다스렸다. 금오(金吾), 조옥(詔獄)라는 별칭이 있었다.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으로, 왕의 곁에서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도승지를 수장으로 좌승지, 우승지 등의 관직을 두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이 있었다.
한성부는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했다.
춘추관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담당했다.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였다.
천문, 지리, 기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았다.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
기출 문제 키워드
- 고려 역사서 편찬
- 삼국사기
- 김부식
- 기전체
- 조선 후기 국학 연구
- 유득공
- 발해고
- 일제 강점기 한국사 연구
- 신채호
- 조선상고사
- 대한 매일 신보
- 조선 혁명 선언
- 고려 만권당
- 이제현
- 고려 7대 실록
- 최충
- 문헌공도
- 사학 12도
- 김정희
- 금석과안록
- 진흥왕 순수비
- 박은식
- 한국통사
- 삼국유사
- 조선왕조실록
- 동명왕편
- 제왕운기
2023년 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66회 한능검 심화 1번~50번 전체 해설
- 66회 한능검 심화 1번 해설 – 구석기 시대
- 66회 한능검 심화 2번 해설 – 옥저
- 66회 한능검 심화 3번 해설 – 신라
- 66회 한능검 심화 4번 해설 – 광개토 대왕
- 66회 한능검 심화 5번 해설 – 백제 무왕
- 66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통일 신라 경제
- 66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통일 신라 말의 정치 변동
- 66회 한능검 심화 8번 해설 – 발해
- 66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견훤
- 66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고려 시대 경제
- 66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거란-고려 관계
- 66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어사대
- 66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의 대몽 항쟁
- 66회 한능검 심화 14번 해설 – 고려 무신정권
- 66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공민왕
- 66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혜심
- 66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월정사 팔각 9층 석탑
- 66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조선 건국
- 66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조선 세종
- 66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무오사화, 기묘사화
- 66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광해군의 중립 외교
- 66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임진왜란
- 66회 한능검 심화 23번 해설 – 조선 영조
- 66회 한능검 심화 24번 해설 – 홍대용
- 66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조선 효종
- 66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조선 후기 경제
- 66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경복궁
- 66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신미양요
- 66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갑신정변
- 66회 한능검 심화 30번 31번 해설 – 삼국사기, 발해고, 조선상고사
- 66회 한능검 심화 32번 해설 – 동학
- 66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 66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아관파천
- 66회 한능검 심화 35번 해설 – 대한 제국
- 66회 한능검 심화 36번 해설 – 대한 독립군
- 66회 한능검 심화 37번 해설 – 일제 무단 통치
- 66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대한 광복회
- 66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3.1 운동
- 66회 한능검 심화 40번 해설 – 이육사
- 66회 한능검 심화 41번 해설 – 의열단
- 66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66회 한능검 심화 43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 66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여운형
- 66회 한능검 심화 45번 해설 – 6.25 전쟁
- 66회 한능검 심화 46번 해설 – 박정희 정부
- 66회 한능검 심화 47번 해설 – IMF 외환 위기
- 66회 한능검 심화 48번 해설 – 강릉 지역의 역사
- 66회 한능검 심화 49번 해설 – 4.19 혁명
- 66회 한능검 심화 50번 해설 – 통일을 위한 노력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