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 문제
13. (가)의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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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 기> |
| ㄱ. 양규가 무로대에서 적군을 물리쳤다.
ㄴ. 김윤후가 충주성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ㄷ. 송문주가 죽주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ㄹ.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동북 9성을 쌓았다. |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했다.
ㄱ. 양규가 무로대에서 적군을 물리쳤다.
거란의 고려 침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ㄴ. 김윤후가 충주성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ㄷ. 송문주가 죽주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1236년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송문주가 죽주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ㄹ.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동북 9성을 쌓았다.
고려의 여진 정벌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고려 몽골의 침입 |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1225년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다.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1236년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송문주가 죽주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고려 원종 때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1270년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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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거란의 침입 |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강감찬이 흥화진 전투에서 승리.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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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여진 정벌 |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
별무반 –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 1115년, 예종 때 강성해진 여진족은 금을 건국.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금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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