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원 간섭기

15번 문제

15. 다음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빈민 구제를 위한 흑창이 처음 설치되었다.

② 망이·망소이가 공주 명학소에서 봉기하였다.

③ 김부식 등이 왕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④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주장하며 난을 일으켰다.

⑤ 유인우, 이자춘 등이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원 간섭기에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했다.

 

① 빈민 구제를 위한 흑창이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때 흑창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망이·망소이가 공주 명학소에서 봉기하였다.

고려의 원 간섭기 이전인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김부식 등이 왕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고려의 원 간섭기 이전인 1145년,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주장하며 난을 일으켰다.

고려의 원 간섭기 이전인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유인우, 이자춘 등이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원에게 빼앗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원의
내정간섭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 원의 일본 원정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 정동행성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 관제 변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 영토 상실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 공녀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 응방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 부마국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원 간섭기
사회 변화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 이연년 형제의 난

1237년, 고려 고종 때 원율과 담양 지역에서 이연년 형제가 봉기를 일으켰다. 김경손이 이를 진압했다.

고려
역사서 편찬
  • 7대 실록(1034년)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왕조실록을 편찬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이에,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는 7대 실록을 현종 때 편찬하기 시작하여 덕종 때 완성하였다.

  • 삼국사기(1145년)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본기, 연표, 잡지, 열전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신라 계승 의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 해동고승전(1215년)

각훈이 쓴 해동고승전은 삼국 시대의 승려 30여 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 동명왕편(1193년)

고려 명종 때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 서사시로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또한 무신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 삼국유사(1281년)

충렬왕 때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하는 등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으며,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 제왕운기(1287년)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서술하면서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내었다.

  • 사략(1357년)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하였는데, 지금은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 전한다.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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