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6.25 전쟁

44번 문제

44. 다음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

②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이 유엔군을 포위하였다.

③ 경찰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습격하였다.

④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 조정된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었다.

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였다. 동시에 북한군의 전력 분산을 위한 장사 상륙 작전이 진행되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후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1951년 1월 4일에는 다시 서울이 함락되었다.

 

①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

1953년 6.25 전쟁이 끝난 이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이 유엔군을 포위하였다.

1950년 10월, 중국군의 개입 후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고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으며, 이 가운데 흥남 철수 작전도 이뤄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경찰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습격하였다.

1948년 9월, 제헌 국회에서는 민족적 과제인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이 법을 근거로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특위)와 특별 재판부가 조직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 조정된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었다.

1950년 1월, 미국은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에 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5⋅10 총선거).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6⋅25 전쟁
  • 배경
    • 미국·소련 군대 철수

냉전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 38도선 무력 충돌

이 무렵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비난하면서 38도선 부근에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벌였다.

 

    • 중국의 공산화 및 중·소의 북한 지원

1949년 10월,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중화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국공 내전에 참여하였던 조선 의용군이 북한에 편입되어 북한의 군사력이 강화되었다.

북한은 중국은 물론 소련에서도 군사 지원을 받았다.

소련은 북한의 남침 계획에 동의하였으며, 중국도 필요한 경우 참전할 것을 약속하였다.

 

    • 애치슨 선언

1950년 1월, 미국은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에 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 6⋅25 전쟁 전개
    • 북한군의 기습 남침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다.

 

    • 유엔군의 참전

유엔은 전쟁이 나자 안전 보장 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남침을 침략 행위로 규정하였고,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16개국이 유엔군을 파견하였다.

 

    • 인천 상륙 작전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였다. 동시에 북한군의 전력 분산을 위한 장사 상륙 작전이 진행되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후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1950년 11월 1일, 국군∙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최대로 북진하였다.

 

    • 중공군 참전

1950년 10월, 중국군의 개입 후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고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으며, 이 가운데 흥남 철수 작전도 이뤄졌다.

 

    • 1·4후퇴

1951년 1월 4일에는 다시 서울이 함락되었다.

이후 전세는 휴전선 일대에서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 국민 보도 연맹 학살 사건

6·25전쟁이 발발하자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인 국민 보도 연맹원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 정전 협정
      • 소련의 정전 제안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소련은 국제 연합(UN)에 정전을 제안하였다.

 

      • 정전 회담 쟁점

정전 회담의 주요 쟁점은 군사 분계선 설정과 포로 송환 문제였다.

유엔군 측은 포로의 자유송환을, 공산군 측은 강제송환을 주장했다.

 

      • 반공 포로 석방

정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정부는 27,000여 명에 이르는 반공 포로를 석방하여 정전 회담은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 정전 협정 체결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여 만에 6·25 전쟁은 정전으로 매듭지어졌다.

휴전협정에 서명한 나라는 미국, 북한, 중국이다.

휴전협정으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설치되었다.

 

  • 한미 상호 방위 조약

1953년 6.25 전쟁이 끝난 이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였고, 미국의 영향력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강화되었다.

반민족 행위
처벌법
  • 배경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미군정은 조선 총독부 출신 관료와 경찰들을 활용하면서 친일파 처단을 외면하였다.

 

  •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

제헌 헌법 101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새롭게 탄생할 대한민국 정부가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1948년 9월, 제헌 국회에서는 민족적 과제인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이 법을 근거로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특위)와 특별 재판부가 조직되었다.

 

  • 내용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고, 재산 몰수 등의 내용이 담겼다.

 

  • 방해

친일파 처벌보다 반공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승만 정부는 반민특위 활동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1949년 반민특위 소속 국회 의원들 중 일부가 공산당과 접촉하였다는 구실로 구속되었다(국회 프락치 사건).

또한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혐의로 고위급 경찰이 체포되자 일부 경찰이 반민 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반민특위 습격 사건).

그리고 반민족 행위 처벌법이 개정되어 친일파 처벌 기한이 줄어들었다(공소시효 단축).

 

  • 결과

반민특위는 활동을 개시한 지 몇 개월도 채 되지 않아 해체되었으며, 682건의 친일 행위를 조사하는 데에 그쳤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자는 이광수, 최남수, 최린 등 12명에 불과하였으며, 그나마도 대부분은 감형되거나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 5⋅10 총선거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5⋅10 총선거).

5⋅10 총선거는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 원칙에 따라 치러진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였다.

총선거를 통해 임기 2년의 198명의 제헌 국회 의원이 선출되었다.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 참가 세력과 많은 중도계 인사가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며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 제헌 헌법 공포

1948년 7월 17일 총선거를 구성된 제헌 국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삼권 분립에 바탕을 둔 헌법을 공포하였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3·1 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으며, 국민 주권에 바탕을 둔 민주 공화국임을 명시하였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였으나,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간선제 방식으로 선출하도록 하였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제헌 국회는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총선거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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