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이승만 정읍 발언,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

42번 문제

42.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여수·순천 10·19 사건이 발생하였다.

②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③ 송진우, 김성수 등이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④ 여운형 등의 주도로 좌우 합작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서 조선 인민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46년 3월 신탁 통치 문제와 한국의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된 후,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은 정읍에서 공개적으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정읍 발언’이라고 한다.

1947년 5월에 열린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① 여수·순천 10·19 사건이 발생하였다.

1948년 10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주둔 중이던 군대를 파견하려 핬다.

하지만 군대 내 좌익 세력이 출동을 거부하고 여수와 순천을 일시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여수·순천 10·19 사건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1948년 1월 인도 등으로 구성된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서울에 도착하여 독립 문제에 대해 우리 지도자들과 상의하는 등 활동을 개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송진우, 김성수 등이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45년 9월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민주당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미 군정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여운형 등의 주도로 좌우 합작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1946년 7월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서 조선 인민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1945년 그 해에 해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이승만의
정읍 발언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된 후,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은 정읍에서 공개적으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정읍 발언’이라고 한다.

한국 민주당은 이 주장을 지지하였다.

미⋅소 공동 위원회
  •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1946년 3월)

신탁 통치안에 대한 격렬한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신탁 통치 문제와 한국의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미⋅소 공동 위원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 소련측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을 지지하는 단체들로만 임시 정부를 수립할 것을 주장하였고, 미국측은 모든 정치 단체를 참여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미국과 소련의 의견 대립으로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고,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는 결렬되어 무기한 휴회에 들어갔다.

 

  •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1947년 5월)

1947년 열린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여기에서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국제 연합에 넘겨 국제 사회의 결의에 따라 해결하자고 제안하였다.

반면 소련은 두 나라 군대가 동시 철수한 다음 한국이 스스로 정부를 수립하도록 맡기자고 맞섰다.

여수·순천
10·19 사건
  • 여수·순천 10·19 사건

1948년 10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주둔 중이던 군대를 파견하려 핬다.

하지만 군대 내 좌익 세력이 출동을 거부하고 여수와 순천을 일시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여수·순천 10·19 사건이다.

 

  • 국가 보안법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인해 국가 보안법이 제정되었다.

한국 문제의
유엔 상정
  • 배경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의 결렬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서 통일 정부를 수립하는 문제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게 되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기로 결정하였다.

 

  • 유엔 총회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 총회에 상정하였다.

1947년 11월,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개최된 유엔 총회는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한국에 정부를 수립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소련의 임시 위원단 입북 거절

1948년 1월 인도 등으로 구성된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서울에 도착하여 독립 문제에 대해 우리 지도자들과 상의하는 등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소련이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입북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북한 지역에서는 이들의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 유엔 소총회

1948년 2월,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한국 임시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광복 직후
국내 정세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건준은 전국에 지부와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또한 건준은 미군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 조직을 정부 형태로 개편하고 각 지부도 인민 위원회로 바꾸어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1945년 그 해에 해산하였다.

 

  • 기타 정당 활동
    • 한국 민주당

1945년 9월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민주당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미 군정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귀국하여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 한국 독립당

김구는 귀국 후 한국 독립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 국민당

1945년 안재홍은 국민당을 조직하였다.

 

    • 조선 인민당

조선 인민당은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당이다.

 

    • 남조선 노동당

1946년 박헌영은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을 조직하였다.

좌우 합작 운동
  • 배경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 좌우 합작 운동(1946년 7월)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미군정도 한국인의 지지를 얻고 소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좌우 합작 위원회를 지원하였다.

 

  • 좌우 합작 7원칙

1946년 10월 좌우 합작 위원회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벌 등에 대한 좌우익의 의견을 절충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미 군정은 이 원칙을 근거로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좌우 합작 7원칙 중 신탁 통치, 토지 개혁, 친일파 처벌 문제 등에서 좌익과 우익의 의견이 충돌하였다.

 

  • 여운형 암살

그러다 여운형이 한치근에 의해 암살되면서 좌우 합작 운동은 중단되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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