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향약

19번 문제

19.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7재라는 전문 강좌를 두었다.

② 옥당이라고 불리며 경연을 담당하였다.

③ 중앙에서 파견된 교수나 훈도가 지도하였다.

④ 풍속 교화와 향촌 자치 등의 역할을 하였다.

⑤ 매향(埋香)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해주 향약 입약 범례문이다.

지방 사족은 향촌 사회를 그들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 향약 조직을 만들었다.

향약은 조선 사회의 풍속 교화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향촌 사회의 질서 유지와 함께 치안까지 담당하는 등 향촌의 자치 기능을 맡았다.

 

① 7재라는 전문 강좌를 두었다.

고려 예종 때에 중앙 교육 기관인 국자감을 재정비하고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옥당이라고 불리며 경연을 담당하였다.

조선 시대 홍문관은 왕의 정치 자문과 왕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을 토론하는 경연을 담당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중앙에서 파견된 교수나 훈도가 지도하였다.

조선 시대 향교는 지방 중등 교육 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부⋅목⋅군⋅현에 각각 하나씩 설립되었다.

향교에는 그 규모와 지역에 따라 중앙에서 교관인 교수 또는 훈도를 파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풍속 교화와 향촌 자치 등의 역할을 하였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매향(埋香)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향도에 관한 내용이다.

향도는 불교와 민간 신앙 등의 신앙적 기반과 동계 조직 같은 공동체 조직의 성격을 모두 띠었다. 주로 상을 당하였을 때에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서로 돕는 역할을 하였다. 상여를 메는 사람인 상두꾼도 향도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조선 전기
향약과 서원
  • 향약

지방 사족은 향촌 사회를 그들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 향약 조직을 만들었다. 향약은 조선 중종 때 조광조가 처음 시행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본래 향촌에서는 마을 단위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는 풍습이 있었다. 향약은 이러한 전통적 공동 조직과 미풍양속을 계승하면서,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한 유교 윤리를 가미하여 교화 및 질서 유지에 알맞게 구성한 것이다.

향약은 조선 사회의 풍속 교화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향촌 사회의 질서 유지와 함께 치안까지 담당하는 등 향촌의 자치 기능을 맡았다. 향약의 보급으로 지방 사림의 지위는 강화되었으나, 지방 유력자가 주민을 위협, 수탈하는 배경을 제공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향약의 4대 절목

1. 덕업을 서로 권함(德業相勸).

2. 과실을 서로 규제함(過失相規).

3. 예속으로 서로 사귐(禮俗相交).

4. 환난을 서로 도와 줌(患難相恤).

기출 자료

해주 향약 입약 범례문

무릇, 뒤에 향약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먼저 규약문을 보여 몇 달 동안 실행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헤아려 본 뒤에 가입하기를 청하게 한다. 가입을 청하는 자는 반드시 단자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뜻을 자세히 적어서 모임이 있을 때에 진술하고, 사람을 시켜 약정(約正)에게 바치면 약정은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좋다고 한 다음에야 글로 답하고, 다음 모임에 참여하게 한다.

〈율곡전서〉

 

  • 서원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다. 백운동 서원은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고 이황의 건의로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조선 명종 때 사액을 받아 소수 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6세기 이후 각 지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서원도 향약과 함께 사림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었다. 서원은 유교 윤리를 보급하고 향촌 사림을 결집,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사학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조선
중앙 정치 체제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의 중앙 관직인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 의정부

의정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 기관이었다.

3정승의 합의에 의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였다.

 

  • 6조

6조는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6조는 국가의 행정을 나누어 맡았다.

6조의 판서(장관)들은 행정만을 맡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에는 의정부의 재상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루어졌다.

 

  • 3사

3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말한다.

3사의 언론은 고관은 물론이고 왕이라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정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3사의 기능 강화는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정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3사의 언관

벼슬 등급은 높지 않았으나,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이 주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중에 판서나 정승 등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 사헌부

사헌부는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았다. 또한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등을 관장했다.

사헌부의 수장은 대사헌이다.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 사간원

사간원은 왕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왕에게 간언, 논박.

사간원의 수장은 대사간이다.

 

    • 홍문관

홍문관은 왕의 정치 자문과 왕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을 토론하는 경연을 담당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이라고 불렀다.

 

  • 의금부

의금부는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과 같은 국가의 큰 죄인을 다스렸다.

금오(金吾), 조옥(詔獄)라는 별칭이 있었다.

 

  • 승정원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으로, 왕의 곁에서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도승지를 수장으로 좌승지, 우승지 등의 관직을 두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이 있었다.

 

  • 한성부

한성부는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했다.

 

  • 춘추관

춘추관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담당했다.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였다.

 

  • 관상감

천문, 지리, 기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았다.

 

  • 승무원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성균관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조선
교육 기관
  • 성균관

조선은 고려의 교육 제도를 이어받아 서울에 최고 학부의 구실을 하는 국립 교육 기관인 성균관을 두었다.

성균관의 입학 자격은 생원, 진사를 원칙으로 하였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 4학

4학은 중앙의 중등 교육 기관이었다.

4학은 중학, 동학, 남학, 서학이 있었다.

 

  • 향교

향교는 지방의 중등 교육 기관이었다.

향교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부⋅목⋅군⋅현에 각각 하나씩 설립되었다. 향교에는 그 규모와 지역에 따라 중앙에서 교관인 교수 또는 훈도를 파견하였다.

 

  • 서당

서당은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사립 교육 기관으로서, 4학이나 향교에 입학하지 못한 선비와 평민의 자제가 교육을 받았다.

교육받는 자의 연령은 대개 8, 9세부터 15, 16세 정도에 이르렀다.

 

  • 서원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다. 서원에서는 봄⋅가을로 향음 주례를 지냈고, 인재를 모아 학문도 가르쳤다. 서원은 이름난 선비나 공신을 숭배하고 그 덕행을 추모하였고, 유생이 한 자리에 모여 학문을 닦고 연구함으로써 향촌 사회의 교화에 공헌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에서는 서원의 설립을 장려하여 전국 각처에 많은 서원이 세워졌다.

백운동 서원은 조선 명종 때 사액을 받아 소수 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 전기
향촌 사회
  • 유향소

향촌 자치를 위하여 설치한 기구가 유향소였다.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향촌 사회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한 기구였다.

  • 경재소

경재소는 중앙 정부가 현직 관료로 하여금 연고지의 유향소를 통제하게 하는 제도로서, 중앙과 지방의 연락 업무를 맡았다. 관할 유향소 임원의 임명권을 행사하였다.

 

  • 향촌(鄕村)

군, 현 아래 면, 이(里) 등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몇 개의 자연 촌락으로 구성되었다. 면, 이에는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지 않았다.

 

  • 촌락의 구성과 운영

촌락은 농민 생활의 기본 단위일 뿐만 아니라 향촌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자연촌으로 존재하면서 동(洞), 이(里)로 편제된 조직이다.

 

  • 면리제와 오가작통법

정부는 조선 초기에 자연촌 단위의 몇 개의 이(里)를 면으로 묶은 면리제를 통해, 그리고 17세기 중엽 이후에는 오가작통제를 통하여 촌락 주민에 대한 지배를 원활히 하고자 하였다.

오가작통제는 서로 이웃하고 있는 다섯 집을 하나의 통으로 묶고, 여기에 통수를 두어 통 내를 관장하게 한 것이다.

 

  • 두레와 향도

촌락의 농민 조직으로 두레와 향도가 있었다.

두레는 공동 노동의 작업 공동체였다.

향도는 불교와 민간 신앙 등의 신앙적 기반과 동계 조직 같은 공동체 조직의 성격을 모두 띠었다. 주로 상을 당하였을 때에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서로 돕는 역할을 하였다. 상여를 메는 사람인 상두꾼도 향도에서 유래하였다.

향도(香徒)

매향 활동을 하는 무리이다. 매향은 불교 신앙의 하나로, 미륵을 만나 구원받고자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는 활동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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