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고려 태조

10번 문제

10. (가)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개국 공신에게 역분전을 지급하였다.

② 외침에 대비하여 광군을 조직하였다.

③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④ 관학 진흥을 목적으로 양현고를 운영하였다.

⑤ 주전도감을 설치하여 해동통보를 발행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고려 태조에 대한 내용이다.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하였다.

또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했다.

그리고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기구로 흑창을 설치했다.

 

① 개국 공신에게 역분전을 지급하였다.

고려 태조는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인 역분전을 지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외침에 대비하여 광군을 조직하였다.

947년 고려 정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광군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려 광종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관학 진흥을 목적으로 양현고를 운영하였다.

고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주전도감을 설치하여 해동통보를 발행하였다.

고려 숙종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고려 정종
  • 광군 편성

947년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광군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했다. 설치 당시의 병력은 30만 명이었다.

고려 광종
  • 노비안검법

956년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

  • 과거 제도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

  • 공복 제정

지배층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백관의 공복 제정

  • 칭제 건원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황제를 칭하고(외왕내제),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사학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서적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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