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통일 신라 말의 정치 변동

9번 문제

9. 밑줄 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① 의창에서 곡식을 빌리는 백성

② 만권당에서 대담을 나누는 학자

③ 혜민국에서 약을 받아 가는 환자

④ 화엄일승법계도를 저술하는 승려

⑤ 청해진을 거점으로 해적을 소탕하는 병사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780년).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① 의창에서 곡식을 빌리는 백성

고려 성종 때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기구인 흑창이 의창으로 개칭, 확대되었따.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만권당에서 대담을 나누는 학자

1314년 고려의 원 간섭기, 원나라에 만권당을 설치하여, 이제현 등 고려 유학자와 조맹부 등 한족 출신 유학자를 불러모아 서로 교류하게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혜민국에서 약을 받아 가는 환자

고려 시대 혜민국을 설치하여 의약을 전담하게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화엄일승법계도를 저술하는 승려

신라 중기 때 통일 신라 승려 의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청해진을 거점으로 해적을 소탕하는 병사

통일 신라 말인 846년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780년).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 96각간의 난

768년 혜공왕 때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각간들이 군사를 일으켜 권력 다툼을 벌였다.

 

  • 김헌창의 난(822년)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예정된 김주원 대신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822년).

 

  • 장보고의 난

846년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적고적의 난

지방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고려 성종
  • 시무 28조

최승로는 시무 28조를 올려 유교 정치사상을 통치의 근본 이념으로 삼고 여러 제도의 정비를 요구

  • 2성 6부제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한 2성 6부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관제도 새로 마련

  • 12목

983년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지방관을 파견

  • 향리 제도

지방관을 파견하고 향리 제도를 마련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

  • 유학 교육 진흥

국자감을 정비하고, 지방에 경학 박사와 의학 박사를 파견하여 유학 교육의 진흥에 노력

  • 의창

태조 때 설치됐던 흑창이 의창으로 개칭, 확대

  • 상평창

물가를 조절하여 빈민을 구제하던 기관인 상평창 설치

  • 건원중보

철전인 건원중보가 만들어짐

  • 강동 6주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

  • 노비환천법

광종 때 노비안검법으로 노비에서 양인이 된 자를 노비로 다시 환원하는 법을 제정

고려
충선왕
  • 1314년 원에서 만권당을 설치하여, 이제현 등 고려 유학자와 조맹부 등 한족 출신 유학자를 불러모아 서로 교류하게 함
고려
백성의 생활 모습
  • 향도

농민은 일상 의례와 공동 노동 등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공동체 조직의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신앙 조직이었던 향도였다.

향도(香徒)

매향 활동을 하는 무리이다. 매향은 불교 신앙의 하나로, 미륵을 만나 구원받고자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는 활동이다.

  • 의창

평시에 곡물을 비치하였다가 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는 의창이 있었다. 이는 고구려의 진대법과 유사한 것이었다.

 

  • 상평창

개경과 서경 및 각 12목에는 상평창을 두었다.

풍년에는 곡물을 사들이고 흉년에는 곡물을 풀어 물가의 안정을 꾀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 동⋅서 대비원

가난한 백성이 의료 혜택을 받도록 개경에 동⋅서 대비원을 설치하여 환자 진료 및 빈민 구휼을 담당하게 하였다.

 

  • 혜민국

혜민국을 두어 의약을 전담하게 하였다.

 

  • 구제도감·구급도감

각종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구제도감이나 구급도감을 임시 기관으로 설치하여 백성의 구제에 힘썼다.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하였다.

 

  • 혼인과 여성의 지위

고려 시대에는 여자는 18세 전후, 남자는 20세 전후에 혼인을 하였다.

고려 초에 왕실에서는 친족 간의 혼인이 성행하였다. 중기 이후 여러 번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인 형태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 여성의 지위

부모의 유산은 자녀에게 골고루 분배되었으며, 태어난 차례대로 호적에 기재하여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없을 때에는 양자를 들이지 않고 딸이 제사를 지냈으며, 상복 제도에서도 친가와 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사위가 처가의 호적에 입적하여 처가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사위와 외손자에게까지 음서의 혜택이 있었다.

공을 세운 사람의 부모는 물론, 장인과 장모도 함께 상을 받았다.

여성의 재가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그 소생 자식의 사회적 진출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통일 신라
불교
원효
  • 모든 것이 한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 사상
  • 다른 종파들과 사상적 대립을 조화시키고 분파 의식을 극복하려고 노력
  • 금강삼매경론 저술
  • 십문화쟁론 저술
  • 화쟁 사상 주장
  • 대승기신론소 저술
  • 극락에 가고자 하는 아미타 신앙을 자신이 직접 전도
  • 무애가를 지어 불교 대중화
의상
  • 당나라에서 유학
  • 화엄일승법계도를 저술하여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화엄 사상을 정립
  • 아미타 신앙과 함께 현세에서 고난을 구제받고자 하는 관음 신앙을 이끌었다.
  • 경북 영주의 부석사 창건 후 화엄종을 널리 펼침
혜초
  • 자신이 돌아본 인도와 중앙 아시아 여러 나라의 풍물을 생생하게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원측

  • 신라 승려 원측은 현장이 한역한 해심밀경에 주석을 한 해심밀경소를 저술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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